김경필 부국장대우 사회경제부장

정부와 정치권이 4·3특별법 개정안을 두고 논쟁을 하는 사이 70여년 한을 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희생자와 유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평생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4·3 당시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슬픔을 70여 년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백여옥 할머니(78)의 법정 진술이다. 

백 할머니는 지난 26일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재심청구인 신분으로 직접 법정에 섰다. 6살 나이에 겪은 충격과 상처를 기억하기조차 힘들었지만 용기를 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진술을 이어갔다. 

백 할머니에 앞서 법정에 선 강승수 할아버지(85) 역시 그랬다. 강 할아버지는 4·3 당시 끌려가 총살을 당한 큰형의 유골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고 했다. 70여 년 전 대전형무소에서 큰형이 보낸 두 통의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차분하게 법정 진술을 이어가던 강 할아버지도 "마지막으로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권유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강 할아버지는 "큰형의 유골은 찾지 못했지만 명예회복만이라도 시켜달라"며 재판부에 눈물로 호소했다.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많은 행방불명 수형인 유가족들도 눈물을 흘렸고, 아픔을 함께 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재심 청구 후 생을 마감하면서 법정에 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4·3특별법 개정안을 두고 논쟁을 하는 사이 70여년 한을 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희생자와 유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군사재판 무효화와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배·보상 등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된 시기는 지난 2017년 12월이다. 

당시 많은 희생자와 유가족, 도민들이 완전한 4·3 해결에 기대를 모았지만 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폐기 됐다. 
이후 21대 국회가 출범하고 지난 7월 일부 수정된 4·3특별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제주시을) 등 136명 명의로 발의됐지만 여전히 겉돌고 있다. 
개정안은 4·3사건 정의 개정을 비롯해 추가 진상조사와 국회보고,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조치와 범죄기록 삭제, 제주4·3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등 실질적 지원방안 마련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국회가 최근 공개한 4·3특별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행정안전부가 군사재판 무효화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도민 반발을 초래했다. 

행안부는 "사법부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과 4·3 수형인 재심판결과 같이 재심제도를 통해 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기존 형사소송법상 재심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 등을 받은 후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해진 보존기간이 경과한 후 삭제함이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나마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4·3특별법 개정안에 특별재심조항을 신설해 일괄 재심을 청구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반발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는 지난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에 제출된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는 희생자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 명예를 회복하는 주체는 정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 재심은 희생자와 유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4·3특별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완전한 4·3 해결이 늦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언제면 4·3 희생자와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지 정부와 정치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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