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혁명은 민중의 지지,민중의 힘에 의해 이뤄진다.그렇다고 그것의 성과가 반드시 민중의 몫으로 자리하는 것만은 아니다.오히려 이용당했으면 당했지 그 성과물은 새로운 특권층의 몫으로 자리한다. 역사가 그것을 웅변해 준다.

서구 기독교중심사회의 대변혁이라는 16세기 이른바 종교혁명은 민중의 지지가 밑힘이다.그들은 수세기 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로마교회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농민계급이 그 선봉으로 농민폭동,농민전쟁이 유럽전역을 휩쓸었다.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이었던 로마교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마틴 루터는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개혁,종교전쟁을 감행했다.그렇다고 대개혁가인 루터가 민중인 농민편이었을까.

그는 농노제도 폐지를 외치는 농민들의 반대편에 섰다.오히려 군주들을 부추겨 탄압하도록 했다.그는 농민들을 저주하고 농민반란군을 죽일 것을 호소했다.농노제도를 반대하는 농민반도들은 악마의 화신이니 미친개 패듯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종교혁명이 민중의 지지에 의해 성공했으면서도,신흥종교세력이란 새로운 특권계급의 탄생을 가져 왔을 뿐 일반대중은 원위치였다.

근대 시민혁명의 과정과 결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민중이 힘에 의해 이뤄졌으면서도 성과물은 민중의 몫이 아니었다.종교혁명이 그 투쟁에 민중을 이용했던 것처럼,시민혁명도 그랬다.천민자본 계급인 신흥 부르조아들이 민중을 끌어 들여 벌인 군주와 봉건귀족에 대한 반란에 다름아니었다.영국의 시민혁명이 그랬고,프랑스의 혁명 또한 그랬다.물론 혁명의 소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새로운 시민계급에 의한 민주주의가 태동했다.민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의회도 탄생했다.그러나 그것은 말이 국민의 의회이지 소수에 의한 새로운 특권층의 탄생에 불과했다. 세습하는 의회계급,그리고 극히 제한된 국민 참정권등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오늘날 국민 참정권이 폭넓게 인정되는,이른바 정치적 민주가 자리하기는 불과 반세기전의 일이다.

의회의 소수 특권 의식 잔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단적인 사례가 정치신인,무소속 후보들에게 유권자 접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이 그것이다.국회의원들이 불공정한 게임법칙을 만들어 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반민중적인 소수 특권의식,기득권 보호에 연연해서다.하지만 지나친 특권의식은 새로운 개혁과 혁명을 부르고,또 다른 계급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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