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선임기자

'살기 좋은'의 기준을 '15분'전과 후로 구분할 수 있을까. 제주는 물론이고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퉈 시도하고 있는 '15분 도시'가 궁금해진다. '15분 도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안이달고 파리시장이 2020년 재선 공약으로 채택하며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된 개념이다. 말 그대로 15분 이내에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이 가능한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하고, 주민들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교육·의료·공원·문화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도시 생활의 관점을 재설계하는 큰 작업이다.

오영훈 지사는 지난 6·1지방선거에서 15분 도시 조성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다. 취임 후 15분 도시 제주 전담팀을 신설하고 워킹그룹 회의를 진행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15분 도시 제주 조성을 위한 기본 구상 및 시범지구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거치고 나면 모를까 아직 '제주형 15분 도시' 구상은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물론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왜'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없다면 또 다른 도시 계획에 머무를 수 있다는 노파심이 앞선다. 파리의 15분 도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 출발했다. 미니메스 지구(Minimes Barracks)를 보면 기존 건물을 공영주택단지와 보육원, 식당, 사무실, 의원 등의 복합용도로 재건축해 일상생활을 위한 기초시설을 배치하고 주차장은 공원으로 리모델링했다.

바스티유·리퍼블리크 광장 교통 중심지에서 보행자 중심 공간으로 재정비했다. 코로나19 이후 교통 혼잡 완화, 사회적 거리 두기, 탄소중립 등을 위해 조성한 자전거 전용도로 영구화도 결정했다. 2024년까지 1400㎞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고 이후 디젤차의 시내진입을 금지하고, 실외 주차장 8만 5000개 가운데 6만개를 폐쇄해 그 자리에 자전거주차장, 보행자 광장, 어린이 거리 등을 조성하여 생태적 도시 전환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파리 의회도 지역을 잘 아는 17개 자치구의 권한과 역할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는 '15분 도시를 위한 파리 협정'을 체결했다. 도로 전환, 녹지와 자연 확충, 지역 공공서비스 유지·개선 등을 위해 250개 사업을 선정해 3억4000만 유로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지원에 나섰다. 기본적으로 합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 유아원, 병원, 상점, 학교, 공원 등을 이용하면서 일상 활동을 할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도시(city of proximities)'를, 사람을 중심으로 만드는 일이다.

국토연구원의 지역밀착형 생활SOC 정책을 위한 복합결핍지수 개발 및 활용 방안 보고서를 보면 제주시의 복합결핍도는 10% 미만으로 '가장 결핍', 서귀포시는 80~90%의 양호 지역으로 분류됐다. 복합결핍지수(MDI)는 소득고용, 교육, 주거, 건강, 생활환경, 안전의 7대 영역을 시군구 단위에서 진단한 지표다. 15분 도시 개념을 만든 카를로스 모레노 프랑스 파리1대학교 교수는 최근 부산에서 열린 관련 포럼에서 제주의 경우 읍·면 등 거리가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해서는 카세어링을 도입하는 등 유연한 적용을 언급했다. 15분이라는 기준을 무작정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살기 좋은가'를 묻고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도 모두 사람의 일이다. 'n분'이 뭐가 중요한가. 주민이 주체로서 지속 가능한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가가 '제주형'과 '살기 좋은'의 공통분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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