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가장 흔히 쓰는 말 가운데 하나인 패러다임은 몇년전만 하더라도 학계에서나 사용하는 단어였다. 지금이야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릴 정도로 익숙한 단어가 됐지만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사고(思考)나 제도(制度)의 틀을 의미한다.

그러나 막상 ‘패러다임의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마차(馬車)가 발달하던 시대에는 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차는 장소에 따라 많은 제약을 받기 마련이어서 연고에 의해 수입이 크게 달라진다. 반면에 자동차시대에는 활동영역이 넓은 사람일수록 유리하고 수입도 마차에 비해 높다.

이처럼 과거에 잘 나갔던 사람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의 사고와 행동도 변화에 맞춰 빨리 달라지는 것이 아닐 뿐더러 수단이나 방법이 설사 바뀌었다해도 제도까지 완전히 바뀌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시발자동차가 그랜저로 바뀌었다고 해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시대에서 인공위성시대로 바뀌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제주국제자유도시 용역 중간보고서를 보면 도대체 기존의 자유도시와 다른 것이 뭐냐는 의문이 든다.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들도 한결같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청정환경과 전통문화가 혼재된 국제자유도시’가 제주도가 추구하는 목표라면 그 실현가능성에 의구심이 아니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과 개발은 상극(相剋)이다. 이 두 가지의 조화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풀기가 어려운 난제중의 난제이다. 해답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만 있어도 대단한 성공이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주국제자유도시에 대한 정체성조차 분명하게 정립하지 못하면서 국제자유도시라는 환상에 너무 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는 바뀌지 않고 몸부터 바꾸는 억지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또한 환상에서 현실로 되돌리는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시발자동차에서 그랜저로 바뀐 것만이 아니다.<김종배·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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