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비상임 논설위원· 전 제주관광대학교 부총장

경조사나 모임이 많은 요즘, 우리 주변에 말만으로 먹고사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궨당문화가 있는 제주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제주의 모든 일들을 거의 다 아는 듯한 말로 집안을 평가하거나, 누구네 집 아들 딸이 어떻게 되고 요즘 어떻게 지낸다는 둥, 거의 호구조사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재미로는 듣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반은 꾸며낸 내용이거나 허구로, 자신이 한쪽 말만 듣거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제주의 모든 엉뚱한 소문이나 잘못된 사실의 진앙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대화에 끼어들지 않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소위 불문즉약(不問則藥)이 상책일 때도 있는 것 같다. MZ세대가 즐기는 노이즈 캔슬링(잡음제거)은 아니더라도,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일시나마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이어폰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때로는 하게 되는 것이 나이들은 우리들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렇게 해야 자신이 발이 넓고 잘 나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좁은 제주 지역사회에서 이런 분들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분들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옛 어른들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잘 안 들리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한다.

불편하거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질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고 사는 것도 때론 행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인간이 나이가 들면 화기(火氣)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말(言語)이 많아지고, 수기(水氣)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머리가 희어지고 얼굴에 주름이 생긴다고 한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게 될 수밖에 없지만 말수를 줄이고 지혜롭게 장수할 수 있어야 한다.

서양의 심리학자 카텔(R.Cattell)이 지적한 대로 사람의 유동성 지능은 새로운 추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학습이나 이해, 문제 해결과 연계해 젊을수록 높게 나타나는 반면, 결정성 지능은 과거에 경험하고 학습한 적 있는 연관 개념을 적용하여 현재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연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이가 들수록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빨리 정확하게 많은 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동성 지능이 발달돼 있는 반면 나이가 들면 과거의 지식을 지혜롭게 정리하고 코칭 하는 결정성 지능이 발달되게 된다. 따라서 나이 듦을 보다 세련되고 침착하게 받아들이되, 말수를 줄이고 지갑을 여는 것이 행복의 길이요 최선이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채널을 돌리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아량은 한치도 없이 한쪽 귀를 막고 자기 할 말만 편협되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아량도 무시한 채 마치 치킨게임을 하는 듯 보인다.

물론 유권자들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의 기강을 흔들려고 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 이 세상의 즐겁고 행복한 것을 누릴 시간도 부족한데 선동 정치를 하는 이의 생각에 흥분하며 맞장구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를 외면하면 최악의 인물이 당선될 수도 있다는 선현들의 말씀도 있지만, 지금은 모르는 게 약이고, 더 나아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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