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논설실장

올 하반기 민생경제 회복을 가늠할 오영훈 도정의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처리를 놓고 제주도와 도의회가 벌이는 힘겨루기가 심상치 않다. 전임 도정시절에는 매년 12월마다 이듬해의 살림살이를 담은 본예산 갈등이 통과의례처럼 발생했지만 오영훈 도정에서는 첫 추경안까지 확산돼 도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실제로 도의회는 어제 상임위원회별로 계수 조정회의를 열고 제주도가 편성한 사업비를 전액 또는 대폭 삭감했다. 삭감액은 430억9100원으로 본예산 대비 4128억원 늘어난 제1회 추경안 증액 예산의 10.4%를 차지한다. 

도의회의 삭감 사유는 민생회복의 추경예산 편성 취지와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사업 시기 부적절, 사업대비 과다 편성 및 사업 효과 미흡 등을 이유로 삭감 처리됐다. 여기에는 오영훈 지사가 역점 추진중인 공공주택 건립부지 매입비 100억원 중 90억원이 과다 편성을 이유로 삭감됐다. 또 제주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 일환으로 추진중인 제주형 도심항공교통(UAM) 신규체험 환경조성사업비 2억9000만원 역시 전액 삭감됐다.

특히 매입비를 반영하지 않을 경우 토지소유자의 진입로 통제에 따른 주민·관광객 불편과 1376억원의 손해배상 국제소송에 휘말릴 '송악산 사유지 매입비' 161억원 역시 사전에 공유재산 취득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의회가 심의권을 활용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재정 효율성 향상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고,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추경안 예산 갈등은 올해 본예산 심사 당시 빚어진 '감정의 찌꺼기'가 치유되지 않아 발생했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도의회가 작년말 본회의에서 도지사의 동의를 얻어 증액 의결한 보조금을 제주도가 올해 집행과정에서 보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삭감한 것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도는 도지사의 동의가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밝힌 '조건부 동의'로서, 부동의 사업을 보조금심의위가 다시 심사해 삭감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도의회는 도지사의 동의를 거쳐 의결한 본예산을 보조금심의위원회가 감액해 1회 추경안에 편성한 것은 의회의 예산안 심의·의결권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도의 예산 편성·집행권과 도의회의 심의·의결권을 둘러싼 갈등은 도민에게 피해를 주고, 지역발전까지 저해할 수 있어 도지사를 보좌하는 제주도 정무라인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특히 도의회 3선 출신으로서 도·의회간 충분한 소통과 협력을 위한 정무부지사의 가교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의회 상임위별 계수조정을 앞두고 추경안 처리 협조를 요청하는 것 보다 예산안 편성 이전 단계부터 도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는 폭넓은 '협치 행보'가 필요하다. 지난 2015년 원희룡 도정의 첫 본예산 편성 당시 가교역할 부족으로 도·의회간 예산갈등을 심화시킨 서울 출신 정무부지사의 전철을 되밟는 것은 금물이다.

민선시대 이후 정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도와 의회간의 예산갈등은 '득보다 실이 많다'. 특히 감정의 찌꺼기를 안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은 누가 이기더라도 상처만 남을 수 밖에 없다. 민선시대 출범 이후 이어지는 예산갈등을 민선8기에서 끝내려면 도·의회가 서로 머리를 맞대어 예산 편성·심의 원칙을 수립하는 합의 모델을 시급히 만들어야 하다.     

도민 이익을 최우선으로 도민이 위임한 예산 편성·심의권한을 행사하는 도·의회의 포용과 협력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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