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진 비상임 논설위원·사운드오브제주 대표

제주도는 2005년 한반도 평화 정책을 위해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평화 실천 사업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마찰을 부드럽게 함과 동시에 망설임과 막연함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추상과 무형의 세계는 인간 본연을 들여다보게 하며 결단력과 동기를 부여한다. 음악과 산책을 할 때, 오묘한 깊이를 보여주는 그림을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시간과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지 답을 얻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만 넘으면, 저것만 해결되면, 매일 조건의 벽을 세우고 또 허물어 가며 답 없는 매일을 사는 것 아닌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결론에 다다른다. 인간은 사고의 깊이를 감정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로운 희생을 보며 흐뭇해지고, 자기 잘못을 깨달으며, 잃어버린 사랑에 아파하고, 오지 않을 미래를 두려워하는 감정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시작은 여러 관점에서 출발했다. 예술은 인류의 역사상 노동 이후 유희 활동(동굴벽화),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제사와 종교의식), 인간애를 표현하는 기술(작품세계)로 진화돼 왔다.

첫 시작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다. 계절을 앞서가는 꽃망울과 초록 잎의 그라데이션, 바람을 따라 춤추는 억새밭을 보라. 매일 같이 다른 구름을 그려내고 쉬지 않고 요동치는 파도를 보라. 자연은 끊임없이 그들의 생명을 자족하고 충실히 온전한 존재를 실현해 내고 있다.

많은 예술가는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고 마음의 치유를 받았다. 모네는 해와 바다의 경계를 지워버렸고(인상 : 해돋이, 1872년), 베토벤은 들리지 않아도 매일 걸었던 숲에 생명을 불어넣었다(피아노소나타 15번 '전원', 1801년).

제주도민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예술가들이다. 우주의 은하수를 잡아당겨 만들어진 '한라산'과 수만 년 전의 '불의 숨길'인 용암의 흔적, 거대한 자연을 상대하는 수호신들이 매일 제주를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안에 마주하고 있으니 바람을 맞는 모든 이들은 제주의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제주도는 70만명 시대를 열어가며 인구 대비 많은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도내 3대 공연장의 가동률은 전국에서 상위권이다. 연속 매진공연을 만드는 서귀포예술의전당처럼 웰빙라이프를 위해 유입된 이주민들의 영향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연령대와 장르가 고르게 분포된 제주아트센터의 기획공연들과 최근 리모델링으로 재개관한 제주문예회관의 적극적인 전시들은 제주의 예술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왜 예술이 멀게 느껴지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부모님과 누려보지 못했다. 음악회는 생소했고 도서관은 멀었으며 그림은 느끼는 것인 줄 몰랐다. 예술 여가를 즐기는 것이 사치라 여겼던 세대는 새로이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부모와 누려보지 못했던 세대는 뭔가 느리고 시작이 서툴다. 미래의 아이들은 창의적인 인간상을 향해 달려가야기에 부모의 손에 달렸다.

제주의 자연을 벗 삼아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은 제주도민을 위한 것이며 함께 누려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한 번쯤은 공연장으로, 두 번쯤은 갤러리로, 세 번쯤은 제주를 산책으로 즐겨보자. 예술의 힘이 이처럼 순환돼 행복한 예술가들이 가까이 가득한 섬. 예술의 섬 제주는 오늘도 묵묵히 그림과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우린 그것을 만끽하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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