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오 비상임 논설위원·제주대학교 비전임교원

어렵다. 사회에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다. 누군가는 소리 없이 응원하고, 누군가는 시끄럽게 이용한다.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청년이다.

주목받던 청년 정책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처음 언급했던 대학 반값등록금은 이제 논의도 없다. 오히려 입학생 수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로 인상 논의가 불가피하다. 2016년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의 공약이던 청년고용할당제는 진전도 없이 일몰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공천 및 발탁을 통해 청년 정치인이 늘고 있지만 정치적 이벤트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렇듯 청년팔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언론사의 2023 청년정치 보고서를 보면, 육성 시스템의 부재, 지원 부족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당내 기득권 들러리로 전락 등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보고서는 정치계의 청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청년 시대로 전환을 꿈꾼다. 청년 장관, 청년 사장, 청년 학자 등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관심은 마치 덜 익은 감을 대하듯 손으로 짚어보고 떫은 표정으로 변한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경우다.

하지만 그 일부 사람들이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청년들이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길을 걷다 보면 환경 운동을 하는 청년·청소년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비아냥스레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뛰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상상한 것보다 더 두렵고 공포스러울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우리 곁에는 항상 어른이 있었다. 자신을 바보라고 칭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메시지를 전하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고,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장하 선생이 있다.

필자의 곁에도 어른이 있다. 한 학자는 필자와 20살 차이가 나는데도 논쟁을 즐겨한다. 그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포용력과 수용력이 있다. 그와의 논쟁은 마치 준비된 선물처럼 좋은 결과물이 기다린다. 다른 학자는 윤리 의식이 강하고 존중하는 언어와 태도를 꾸준히 보여준다. 그에 대한 존중은 존경으로 이어지고 신뢰를 쌓게 했다.

그들에게는 나이 상관없이, 오랜 시간 관계를 갖고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해 필자가 생각하는 어른의 특징은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다. 필자가 후배 연구자,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고 책상에 붙여둔 문장이기도 하다. 필요한 말만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누구나 많은 이유와 사연이 있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

어른이 필요한 시대의 청년들은 삶의 굳은살이 박힌 말과 진정성이 담긴 행동을 보여주는 다양한 어른을 찾으면 좋겠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는 '시대에 소금같은 어른'. 혹자는 없다고 단정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제 필자도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 어른이라서 무뎌질 수 있는 일을 경계하고,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청년들에게 미루지 말며,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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