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비상임 논설위원·브리즈 아트페어 디렉터

시장 구경을 갔다가 설탕을 묻힌 꽈배기를 만났다. 마감세일 시간이라 그런지 한 봉지에 세 개씩 들어있는데 1000원이었다. 작고 동그란 찹쌀 도넛은 여섯 개, 크기가 크고 팥이 들어있는 건 두 개에 1000원이었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인데다 종류별로 다 사도 3000원이라 망설임 없이 계좌이체를 했다. 도넛을 사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도넛을 먹었다. 그런데 종류별로 한 개씩 먹었을 무렵부터 니글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티를 한 잔 마셨지만 느끼함이 가시지 않았다. 배도 더부룩하고 아직 3분의 2가 남아있는데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결국 남은 도넛들은 며칠 간 방치되다 버려졌다. 1000원어치만 샀다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싸다는 이유로 혹은 허기 때문에 좋은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일들은 필자의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할인을 이유로 계절이 끝날 때 옷이나 물건을 묶음으로  사고 후회하는 짓은 언제 그만 둘 수 있을까. 청소하거나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들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자고 생각하면서도 행동하는 건 어렵다. 뭔가 필요하면 1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고 몇 시간 만에 배달을 해주는데 왜 집에 물건을 쌓아둬야 할까.

필요한 것 이상을 사 두는 일은 공간, 시간과 돈을 한꺼번에 낭비하는 일이다. 필자는 매우 인간적이기 때문에 아는 것도 자주 잊고, 의지가 박약하다. 하지만 자주 반성하고 새로 결심함으로써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저 많은 것보다 '내게 필요한 양' '내게 충분한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

내게 충분한 품질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뒤늦게 새로운 공부를 해서 전보다 수입이 좋은 직업을 갖게 된 동생은 가끔 내게 농담을 던진다.

"스스로는 못 살 것 같으니 언니 샤넬백은 내가 사줘야겠네" "오, 정말? 언제 사줄 건데?" "십년만 기다려. 내가 돈 벌어서 오십 살 기념으로 사줄게" "빨리 오십 되고 싶어"

나는 그 농담이 현실이 되길 기대한다. 여성복에 혁신을 가져온 샤넬은 우리의 로망이니까. 하지만 샤넬이 없다고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럭셔리 브랜드의 옷을 사거나 비싼 숙소에 가볼 때가 있다. 큰 맘 먹고 하룻밤 묵었던 일본의 고급 리조트는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시간이 명성이 된 곳이라 시설들은 사용감이 느껴졌다. 대신 구석까지 먼지가 없이 반들거렸고, 견고하고 안정된 서비스와 품격 있는 친절함에 몸과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화려함에 위축되는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편안하고 다정한 곳이 한 수 위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명품, 럭셔리를 넘어 하이엔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인플루언서가 소개하는 좋아 보이는 것들, 럭셔리 브랜드들의 광고가 필자 포함 많은 이들에게 선택의 기준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때로 무리한 소비에 후회가 밀려오며 '내게 왜 이런 게 필요했지?' '이 소비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필자는 일을 할 때나 생활에서 늘 좋은 것을 추구하고 싶다. 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능한 좋은 것을 주고 싶다. 하지만 많고, 크고, 비싼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비싼 가습기를 써도 청결히 관리하지 않으면 몸에 해롭고, 큰 집도 청소와 정리가 돼있지 않으면 쾌적하지 않다. 옷이 너무 많으면 꼭 필요할 때 잘 찾아 입기 힘들고 명품백은 비 올 때 들기 부담된다. 내게 충분한 만큼만, 내게 좋은 것들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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