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영 비상임 논설위원·법무법인 결 변호사

제주의 가을은 육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내륙에서는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가을을 실감한다면, 제주는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을 보면서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 여름 내내 나뭇잎 색깔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푸르기만 했던 감귤이 노랗다 못해 발갛게 익어가면서 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진다.

꽤 오랜 기간 서울 생활을 하면서 날씨가 추워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부모님께서 귤을 보내주셨고, 친척들이나 이웃들까지 귤을 보내주시다보니 친구들과 많이 나눠 먹었다. 그러다 한꺼번에 몇 박스씩 올라오고 바빠서 먹거나 나누지 못하다 보면 아깝게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나는 귤을 사먹어 본 적이 없다며 괜히 너스레를 떨기도했다.

지금도 지인들이 제주에 오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식당에서 식사 후 마음껏 먹으라며 놔둔 귤이다. 심지어 귤을 담아가라며 비닐봉투를 두는 곳도 있을 정도니 매번 비싸게 귤을 사먹던 사람들은 놀랄 법 하다. 최근 제주 사투리를 구사하며 인기 얻고 있는 한 유튜버가 제주에서는 귤을 사먹지 않고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귤을 그냥 주워 먹는다며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주에서 귤 인심이 넉넉한 것은 그만큼 귤을 많이 생산하기도 하고 상품으로 판매하고 남은 비상품을 서로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귤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정말 아주 오래전 이야기일 터이고 요새는 감귤농가도 많아지고 수확량도 늘어 매해 감귤 가격이 감귤 농가의 걱정거리다. 한 해 열심히 농사를 지어놓고 제 가격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도 허망한 일이지만 포전계약, 소위 '밭떼기 거래'를 하고 대금을 아예 지급받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도 접하게 된다.

감귤을 따고 나르는 일이 많이 힘든데다 일손까지 부족하다보니 수확하지 않고 포전계약을 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보통 소개 받거나 지인과 거래하다 보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사일에 바쁘기도 하고 여러 해 거래를 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상대방을 믿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다보니, 상대방이 감귤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데도 계약 내용을 증명하지 못해 제대로 청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문자메시지나 통화 녹취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대금을 산정해 청구해 보겠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가액을 산정하기가 어려워 도통 방법이 없다. 심지어 감귤 가격이 좋을 것을 예상하고 매수하기로 했던 상대방이 예상만큼 가격이 좋지 않자 아예 수확을 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돼 버리는 경우도 있다. 결국 발만 동동 구르다가 그대로 뒀다간 나무가 상해 내년 농사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급하게 일손을 구해 수확하고서 울며겨자먹기로 제 값도 받지 못하고 팔기도 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포전계약 시 적어도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최소한 매매대금과 지급시기, 지급 방법, 수확시기 정도는 기재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울러 지급 상대방에 대한 인적 사항과 지급 가능한 상황인지까지 파악해 두면 더더욱 바람직하다. 도에서도 유통인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읍면 동사무소와 지역 농·감협에 표준계약서를 비치하고 있기도 하다. 부디 한해 땀 흘려가며 농사지은 귤림추색이 바래지지 않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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