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이, 지영이, 연재에게

너희 셋은 엄마아빠의 모든 것이고 우리의 미래란다. 2003년에는 우리가족 모두의 희망을 쏘자.

4년 전 제주도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엄마, 아빠는 며칠을 뜬눈으로 보냈단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땅 한 마지기도 없는 곳에서 너희들에게 비쳐지는 부모의 모습이 패배자나 현실을 도피한 부모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고 많은 걱정을 했지.

단지 저청중학교 살리기 추진본부에 의지하며 무작정 제주행을 결심했단다.

아빠는 성인이 되어 처음 울었다. 보증을 잘못 서서 우리의 전 재산을 잃었을 때도 집안의 친인척이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아빠가 할아버지와의 전화통화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아버님 불효한 이놈을 용서하십시오 라는 말에 왜 그리 목이 메이는지.

제주에 온 이튿날 짐도 다 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신부님께서 가정 방문을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밖에서 ‘자리삽서 자리삽서’하는 말에 돗자리 방석을 파는 줄 알고 뛰어갔는데 웬 생선을 팔고있었지.

제주 사투리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한 3개월은 그렇게 보내고 나니 조금씩 알아듣게 돼 의사소통은 된단다. 그래도 아직 할머니들의 말씀은 60%정도 밖에 못 알아들어.

땅을 빌려 주신다는 이웃주민의 말씀에 너무 고마워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기쁜 마음으로 들떠있음에도 잠깐 무엇을 어떻게 농사를 짓나 고민을 하다가 참깨농사를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1500평에 참깨농사를 시작했는데 그 해 따라 웬 태풍과 비가 그렇게 많은지. 참께 수확은 5말! 기가 막혔단다. 제초제에서부터 살충제 살균제를 짊어지고 뿌리는 분무기로 25번을 1500평에 뿌리고 나서 이튿날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누워있기를 몇 번. 동력분무기로 하면 1시간이면 끝날 일을 아빠가 미련한 건 지 멍청한 건 지.

또 한번은 집주 위에 잡초가 많아 제초제를 뿌렸는데 뿌릴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10일 후 난리가 났단다. 옆집 할아버지께서 애써 농사지으신 양회를 다 죽였으니. 아빠 눈에도 제주도 말로 분명히 ‘검질’이었는데! 한달 동안은 고개도 들지 못했단다.

모든 게 새로 배워야 할 일이었단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아니 최선을 다했단다. 처음 감자농사 300평에서 지금은 감자만 1만5000평을 지을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 아니겠니.

아빠는 아직 농부가 아니야. 농부의 흉내만 낼뿐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해. 농사를 더욱 배워야 하고 노력해야 한단다.

너희들은 아빠가 힘들어 할 때 항상 ‘아빠 우리 서울로 다시 이사가요, 아빠는 취직도 할 수 있고 옛날의 사업도 다시 할 수 있는데, 편하게 살고 학교나 문화시설이 잘 되어 있는 도시로 가자’고 하지만, 아빠는 그럴 수가 없단다.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농사를 짓고 나서의 포만감은 누구도 모를 거야. 농사는 너희들을 키우는 것과 꼭 같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가 키워낸 감자에 너희의 이름을 따서 주지연농장이라는 이름을 쓴단다. 정성을 다해서 지은 농산물이니까.

너희들은 하고싶은 공부와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실이 오리라 믿는다. 우리 집의 가훈이 뭐냐. 바른 마음으로 성실히 노력하면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성의정심 성사재인"(誠意正心 成事在人) 아니냐.

2003년에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갖고 노력을 하자.

주영아, 지영아, 그리고 연재야 사랑한다.

-아빠가-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