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향 비상임 논설위원·세계자연유산해설사

'스스로(自) 그런(然) 자연(自然)', 자연 중에 가장 큰 자연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다. 지금 자연을 바라보는 내 눈(眼)이 있기에 자연이 존재하고,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섬의 참 아름다움은 눈(目)에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바라봐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볼 수가 있을까. 눈을 뜻하는 한자는 눈 목(目)자와 눈 안(眼)자가 있다. 눈 목(目)자는 몸의 달린 형상의 눈이고, 눈 안(眼)자는 보는 눈, 생각하는 눈을 말한다. 제주섬은 관광객의 눈(目)으로 바라보지 말고, 여행자의 눈(眼)으로 바라봐야 한다. 제주는 관광을 해야 하는 섬이 아니라, 여행을 해야 하는 섬이다. 그럼 관광과 여행의 차이는 무엇인가.

관광객은 제주섬이 품고 있는 비경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자는 제주섬의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를 만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다. 관광객의 눈으로 제주섬의 비경을 바라보면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이 덜하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제주섬을 바라보면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이 더하다. 제주섬의 비경은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제주의 관방유적(關防遺蹟), 3성(城), 9진(鎭), 25봉수(烽燧), 38연대(煙臺)도 제주섬의 생긴 모습에 있듯이 제주섬의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도 섬의 생긴 모습에 오롯이 있다. 제주섬의 여행은 보여주는 관광에서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여행으로 바뀌어야 섬이 다시 꿈틀거릴 것이다. 모든 정책도 관광산업에서 여행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화산이 만든 척박한 땅에서 바람과 싸워 이긴 우리의 선조들은 자기가 낳은 생명들을 키워내며 그 삶의 고통을 그리스 신화보다 더 큰 신화와 설화에 실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변방의 섬. 일제강점기, 해방 후 제주 4·3을 거치며 우리의 선조들은 한의 역사를 이겨낸 섬의 문화를 만들었다.

태평양전쟁의 패전이 확실해지자 일제는 일본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결7호 작전을 세워 제주섬 120여 곳에 700여개의 지하 갱도진지를 만들어 제주를 군사요새화했다. 제주에 3곳의 비행장을 건설했고, 제주의 오름 중에 가장 큰 오름 어승생악에 토치카를 만들어 일본군 본부를 뒀다. 일제는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오름에 자살특공정 신요(震洋)와 인간어뢰 가이텐을 숨겨놓기 위해 제주의 제1경 성산, 가장 아름다운 서우해변을 품고 있는 서우봉, 지질트레일의 대표적 명소 수월봉, 제주의 오름 중에 가장 젊은 오름 송악산, 서귀포 삼매봉 아래 아름다운 황우지해안에 갱도진지를 뚫어 5대 해상특공진지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제주는 섬의 아름다움만 보여주는 관광을 했다. 섬이 필자에게 그런다.

"섬에 사는 생명만 고통받았다지 마라, 그 생명을 품은 섬은 더 큰 고통을 받았다"

섬이 품고 있는 비경만 아름다운가. 그 고통을 참아낸 생명과 그 생명보다 더 큰 고통을 참아낸 섬의 한의 역사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는 그 비경의 아름다움만 보여주는 관광을 멈추고, 일제가 일본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제주섬에 세운 결7호 작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산, 서우봉, 수월봉, 송악산, 황우지해안을 여행하며 섬(島)의 해(日)와 달(月)이 품은 세월(明)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 다섯 곳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제주섬 가장 아름다운 곳에는 한의 역사와 문화가 있고, 가장 큰 비사의 이야기가 있다. 제주섬에 사는 생명들이 참아낸 고통보다 제주섬의 오름과 산, 평원에 뚫린 지하갱도진지의 고통을 참아낸 섬의 고통이 더 크다.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를 만나게 하는 여행을 제안한다. 그래야 섬이 다시 살아 움직이며 제주섬을 찾는 여행자가 늘어난다.

"제주는 관광을 해야 하는 섬이 아니라, 여행을 해야 하는 섬이다"

관광갱의 눈(目)으로 바라보면 눈이 커지고, 여행자의 눈(眼)으로 바라보면 눈은 작아지고, 고개를 끄덕인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