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익 비상임 논설위원·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새해 벽두부터 일본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혼슈 북서부지역인 노토반도(能登半島) 일대에서 일어난 진도 7.6규모의 강진이다. 게다가 지진에 따른 쓰나미 발생으로 12년 전 동일본대지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일본의 방송매체들은 '빨리 높은 곳으로 대피해'라는 자막을 걸고 경고 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진도 7.6의 강도는 집 안에 있으면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유발하는 세기다. 그러기에 상당기간 심한 여진이 따르고 많은 사상자와 각종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것은 지난 동일본지진의 교훈에서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니나 다를까, 128명 이상이 사망했고 집이 무너지고 불타고 다수의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그 피해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막대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자연 재해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간과 장소에서 갑자기 발생한다. 지난 30여년 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일본에서의 지진 피해를 포함한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에 의한 재앙이 늘어가고 있다. 예측 가능한 재해에 철저히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서는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는 앞으로의 대비태세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자연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만큼은 아니지만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다. 우리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나비(2005년), 나리(2007년), 산바(2012년), 나크리(2014년), 솔릭(2018년)과 같은 강력한 태풍의 영향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기에 태풍이나 비슷한 크기의 다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난개발에 따른 환경변화로 심각한 피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의 식생 변화와 제주바다가 대표적 사례다. 한라산에서는 구상나무, 시로미, 돌매화나무, 털진달래, 한라솜다리 등 한대성 식물이 줄어들고 대신에 온대성 식물인 소나무, 억새, 제주조릿대 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한국 고유 식물인 구상나무는 한라산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지만, 소나무 분포 확대로 피해를 입고 있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제주바다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2021년 10월 하순에 가파도의 해녀를 취재한 한 언론은 "감태 등의 해조류가 줄어들기 시작해서 몇년 전부터 미역과 톳이 아예 나지 않아 가파도 바다가 죽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고 한 해녀의 말을 인용·보도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바다에서 흔히 잡히고 제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자리돔'과 '방어'의 실종도 앞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 생태계를 교란시켜 국적불명의 어류와 해조류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면면들은 도민의 삶과 정신, 노동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삶이 피폐화되고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는 요인을 제공하면서 지진피해 못지않은 정신적 재해를 서서히 잉태시키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대지진 피해 이상의 물질적·정신적 대재앙으로 되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제주사람 70만이 먼저 실행해야 할 과제를 찾아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구상나무가 살아나고 자리돔이 돌아올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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