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식 비상임 논설위원·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교제란 쌍방이 인식 상의 일치를 촉진해 합작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자주 대한다.

학생의 뜬금없는 상담 메일을 받았다. 인사도 자기소개도 없이 단 두 줄, 모 자격 시험을 보겠다는 것과 또 다른 자격증을 따야 한다면 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끝맺음도 없었다. 일방적 고지와 요구뿐이었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디지털 매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을 발달시키지만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음으로써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은 약화시킨다.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는 요소에 대한 효능감은 높지만 고등 수준의 인지력을 요구하는 추론, 상호텍스트적 연결에 대한 효능감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추론이든 상호텍스트적 연결이든 공감을 전제로 하기에 일방적인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소위 MZ세대의 공통된 병증이 아닐까.

단방향적 댓글에 단련된 그들의 언어는 일방적이어서 가히 폭력적이다.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MZ세대를 소위 꼰대가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틀리기만 한 것일까. 1만5000년전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새겨진 그림문자를 해독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의미였단다. 그런데 그 밑에 새겨진 또 다른 그림은 '꼰대들은 아무것도 모름'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세대 갈등의 오랜 역사를 과장하기 위해 지어진 우스개다.

최근 각종 시민단체나 봉사단체들은 대부분 참여자들의 고령화에 우려를 표한다. 젊은 회원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보다 자신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어서 집단적 모임에 다소 소극적인 듯하다.

이른바 'MZ세대'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행동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 세대다. 단순함과 재미를 추구하며 방식이 다소 거칠거나 서툴러 비난 받지만 개인 존중과 실리에 입각해 공정, 투명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기성 세대들이 과거 자신들이 한 것처럼 사회 문제에 관심 갖고 다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소비하라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기 쉽다.

MZ세대들은 한자를 모른다. 대부분 글쓰기도 서투른 편이다.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단어의 개념에도 취약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며 새로운 가치관과 소통 방식으로 문화와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이모티콘이나 신조어를 마치 사자성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그들은 보드게임이나 SNS 등으로 상호 교제하며 각종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신인류의 지식 흡수 체계는 다만 기성세대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를 뿐이다.

서두의 그 학생은 아마도 메일을 댓글처럼 썼을 뿐이다. 받는 입장에서 황당하지만 실용적이고 핵심적인 현재의 어법에 충실한 언어였다. 메일이 무례했다는 이유로 성실하게 답하지 않은 선생의 행태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꼰대에 의해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에 의해 추동(推動)돼 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에 꾸짖고 바로잡으려 한들 1만5000년 동안 유지돼 온 관성 앞에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한 앞발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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