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원 비상임 논설위원·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

대설에 정말로 눈이 많이 내릴까. 제주지방기상청이 60년간(1961~2020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설(12월 7일) 날 눈이 내릴 확률은 16.7%였다. 더욱이, 적설량을 기록할 정도로 눈이 내린 날은 하루도 없었다. 반면, 2월 2일에 눈 온 날이 가장 많았고(24일), 1월 30일~2월 3일까지 5일 동안 20일 이상 눈이 내려 제주도는 이 시기에 눈이 자주 내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기상 100년사'에 의하면, 기상관측이 시작된 1923~2023년까지 100년간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날은 1984년 1월 18일로, 제주시에 13.9㎝의 눈이 내렸고, 한라산 정상 부근엔 2m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2일에도 제주시에 8.3㎝의 눈이 내렸다. 이처럼 많은 눈은 농작물 피해, 비닐하우스 붕괴 등 시설물 피해, 항공기 운항 중단, 도로 교통 마비 등 우리들의 삶에 여러가지 피해를 준다.

그렇지만, 큰 눈은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가뭄피해를 줄여주고 댐과 저수지 저수량을 늘려주며, 산불방지 역할도 한다. 눈이 내리는 지역(고도)이나 기상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적설량 10분의 1을 강수량으로 본다.

예를 들어, 한라산 정상 지역에 겨울철 동안 누적 적설량이 2m였다면 200㎜의 비가 내린 것이다. 한라산 정상 지역의 동절기 누적 적설량이 대체로 1~3m 범위임을 고려하면, 100~300㎜의 비가 눈으로 내리는 것이다. 강우와는 달리 적설은 서서히 녹기 때문에 유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함양시킨다.

그러나 '2023 제주특별자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후반기에 제주도의 연평균기온은 현재보다 5.8도 상승하고, 여름이 211일로 현재보다 82일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 될 경우, 21세기 하반기에 한라산 지역에서 적설에 의한 지하수 함양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많은 눈이 내리면, 도로에 쌓인 눈을 제거하기 위해 제설제를 뿌린다. 주로 사용되는 제설제는 염화칼슘이나 염화나트륨(소금)이다. 지난 12월 22일 폭설을 전후로 제주시는 260t의 제설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연간 사용되는 제설제는 1000~4000t에 달한다. 제설제로 인한 환경 피해는 국내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제주도에서는 구체적으로 보고된 바가 없다.

특히, 제설제가 눈 녹은 물과 함께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 사례는 세계 여러 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설제 사용으로 인한 법적 분쟁 사례가 있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공원에서 겨울철 경주로 결빙을 막기 위해 사용한 소금이 인근 농원 지하수를 오염시켜 키우던 분재와 화훼류가 피해를 입었다는 분쟁이다. 이에 대해 2020년 대법원은 한국마사회에 40%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한라산 정상 지역 적설에 의한 지하수 함양 효과는 밝혀지지 않았다. 21세기 후반기에 눈에 의한 지하수 함양이 사라질 경우, 어느 정도 함양량이 줄어드는지, 또 이것을 상쇄시킬 방안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라도 적설에 의한 지하수 함양은 연구돼야 한다.

또 폭설이 자주 발생하는 1100도로와 5·16도로, 중산간 도로에 뿌려지는 제설제가 지하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필요하다. '설마 제설제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될까?' 방심하는 동안 눈 녹은 물과 함께 제설제 성분이 지하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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