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비상임 논설위원·브리즈 아트페어 디렉터

새해부턴 소비를 대폭 줄이려고 했다. 사실 매해 하는 결심이다. 필요해서 사고, 필요할까봐 사놓고, 궁금해서 사보고, 생각나서 사두고, 할인하니까 산다. 무언가를 사거나 구경하지 않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 책장도, 옷장도, 냉장고도 빈틈이 없어지는데 통장은 헐렁해지고 마음도 허전하다. 더 이상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 돈뿐만 아니라 쇼핑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도 아깝다. 궁색하지만 환경을 위해서도 줄이고 싶다.

하지만 '작심3일'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자꾸 나를 흔드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다니는 피트니스센터의 '1년에 단 한 번, 회원님들을 위한 특별한 할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운동도 중요한 올해의 결심 중 하나니까, 건강을 위한 투자니까. 옷은 정말 안 사려고 했지만 한 달 전 수십번 고민하다가 참았던 코트의 65% 할인 소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사자마자 품절 표시가 뜨는 걸 보니, 운이 좋았다. 겨울옷은 1월에 사야하는 거였다.

1월이라 사게 된 것들은 또 있었다. 큰 맘 먹고 대청소를 하면서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오랫동안 교체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아무데다 뒹구는 것을 정리하기 위해 작은 수납장도 구입했다. 외식을 줄이고 요리 횟수를 늘리려다보니 앞치마도 필요했다. 베개와 이불커버도 새 것으로 마련했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집이 정돈되고 반짝거리자 비로소 마음도 바로 세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을 쉽게 구입하면서도 정작 왜 이런 생활용품들은 사지 않았을까? 옷 사는 데 많은 지출을 했던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게 중요해서였을까? 소득의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일이 꼭 나쁜 걸까? 때로는 왜 쇼핑을 하면서 죄책감이 들까? 돈을 더 많이 벌면 괜찮을까? 최근 수년 동안 자기검열과 자기반성의 늪에 자주 빠지곤 했다. 그러면서도 중독된 사람처럼 쇼핑을 끊거나 획기적으로 줄이지는 못했다.

어떤 소비를 해야 할까? 돈을 쓰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할 때가 생각난다. 수영을 시작한 엄마의 수영복을 고를 때, 동생에게 어울릴 것 같은 가방을 발견했을 때,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밥값을 계산할 때 좋았다. 늘 내게 더 많은 것을 주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겠지.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연과 전시회 입장료를 내는 것도 아깝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즐기고 싶고, 예술가를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고마울 때가 많다.

돈을 쓰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거나 후회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사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시간마저 너무 많이 써버렸을 때, 허무했다. 시간은 돈보다 귀한 자원인데 대부분의 쇼핑은 돈과 시간을 함께 가져간다. 시골에 사는 엄마가 길에서 몇십분을 기다려 버스를 탈 때면 쉽게 택시를 타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수입에 비해 비싼 옷을 할부로 장만한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 건 명품을 걸친 사람이 아니라 검소한 부자를 만났을 때였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겠다는 생각은 소비의 방향을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건강을 위한 운동과 식재료를 위해, 독서와 예술을 즐기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과 추억을 쌓기 위해, 세상을 돌보는 분들에게 작은 기부라도 하는 데 돈을 쓰고 싶다. 물론 매번 실패하겠지만, 1월마다 결심할 생각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