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비상임 논설위원·호서대학교 교수

올 겨울은 유난한 것 같다. 초겨울에는 날이 더워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 겨울이 맞나 싶었는데, 갑작스런 한파와 폭설로 추위가 맹위를 떨치니 역시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겨울이 혹심한 계절이기에 어려운 상황을 겨울과 추위로 비유하고 이를 극복하면 얼음이 녹고 봄이 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2년여간 역병으로 긴 겨울을 보낸 우리는 아직 봄다운 봄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 얼마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산업이 69를 기록해 아직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없음을 보여줬다. 기준값을 100으로 해 이보다 높으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시각이,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고 해석한다. 분기별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더라도 2022년 4분기의 -0.3%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지난 3분기 동안 0.6%를 기록해 경기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품목의 물가 상승률도 크게 올라 설차례상 비용도 예전보다 부담스러울 전망이다. 리오프닝에 따른 기대심리에도 불구하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 올 겨울은 유독 혹독한 계절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연초부터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정치테러와 북한의 도발 행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화롯가에 둘러 앉아 친근한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세상의 어떤 근심도 녹여냈으면 하는 바람이 그리울 때다. 정담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더 고맙고, 힘이 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각종 매체가 전하는 소식이 기대와 달라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취임 8일 후 1933년 3월 12일, "좋은 밤입니다. 친구들…"이란 멘트로 라디오 연설을 했다. 대공황의 시기에 미국의 정치와 경제문제 대해 대통령의 견해를 공식적이고 딱딱한 담화의 형식이 아니라 화롯가에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는 듯한 친밀감을 주는 대화로 한담하듯 자신의 정책을 피력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런 형식을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이라 했다. 라디오 보급이 일반화됐던 당시 루스벨트는 라디오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고 모두 28차례에 걸쳐 황금시간대에 30분짜리로 방송한 프로그램은 모두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이뤄냈다. 루스벨트는 실업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미국인들에게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New Deal)정책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또한 '노변정담'의 형식을 빌어 국민에게 자신의 소신을 잘 전달하는 기회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인상을 심어줬으며 여론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국민적 신뢰도를 높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소박하고 진솔한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설득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고 집중도도 높아 다른 나라도 많이 채용했다. 결국 루스벨트는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미국에서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됐다.

'노변정담'은 대중 매체의 영향력을 언급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지만 일각에선 여론조작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유야 여하튼 소통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은 것임은 분명하다. 더욱이 이렇게 춥고 긴 겨울에 따스한 화롯가의 정담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광화문 대통령'과 출근길 '도어 스테핑'은 비록 못지켰지만, 외면과 회피만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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