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비행기 몰아 탈출
중국서 항일운동 등 불구
여전히 독립유공자 미지정
11차례 심사 번번이 무산

고 임도현 선생의 조카 임정범씨.
고 임도현 선생의 조카 임정범씨.

일제 강점기 당시 조국을 위해 항일 운동을 전개한 제주 출신 비행사가 여전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후손들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 제출하고 있지만 20년이 넘도록 정부로부터 '퇴짜'를 맞는 등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28일 임도현항일비행사기념관에서 만난 임정범씨(69)에 따르면 그의 백부인 故 임도현 선생은 지난 1909년 3월(호적상 1911년 3월) 신좌면 와현리(현 조천읍 와흘리)에서 태어났다.

임 선생은 조천 공립소학교와 만주 봉천 신민 소만중학교를 거쳐 서울 경성중동학교에서 재학하다 중도 퇴학한 후 192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30년 일본비행학교에 입학한 임 선생은 이듬해 12월 비행훈련 도중 동료 6명과 함께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 장제스의 환영을 받으며 중국 광서성 유주육군항공학교의 창설요원으로 합류했다.

후배 조종사들을 양성하던 임 선생은 '특1급 요주 인물'이 일본과 조선 땅에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판단, 1933년 고향이 제주에 몰래 들어왔지만 윤봉길 의사의 거사(1932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로부터 체포됐다.

임 선생은 1934년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왼쪽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후 다시 제주에 몰래 들어와 숨어 살다 1936년 무고·공살 혐의로 기소돼 1937년까지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제주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려다 두 차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해방 이후 제주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다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채 1952년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이같은 고 임도현 선생의 행적은 조카 임정범씨가 1977년에 백부의 자필 이력서를 발견한 이후 일본과 중국 등 해외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해 밝혀냈다.

그는 1999년 제주보훈청에 처음으로 백부의 자필 이력서를 제출하고, 2004년부터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보류' 등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는 "11차례에 걸쳐 자료를 보완하고 백부의 유공자 심사를 신청했다"며 "하지만 매번 명확한 이유 없이 탈락시키며 유공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십년 동안 제출한 자료가 모두 누락된 것을 심사자료에서 확인했다"며 "그간 모은 자료가 전부 폐기된 것 같다. 백부님이 나라를 위해 싸운 대가가 이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입증 자료 단 1개 만으로 유공자로 등록되는 경우도 많다"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백부님의 공적을 다시 들여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보훈청은 "현재 전문 업체에 용역을 맡겨 도내 독립운동가의 공적과 문헌 등을 발굴하고 있다"며 "용역이 완료되는 대로 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기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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