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원 비상임 논설위원·제주곶자왈연구재단 연구소장

오는 22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153개국 3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러나라 국경을 통과하는 강이나 호수, 그리고 대수층으로부터 물을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여러 국가를 관통하는 강물 이용 문제로 크고 작은 분쟁이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촌 국가간 물 분쟁을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해야 함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유엔은 올해 세계 물의 날 주제를 '평화를 위한 물(Water for Peace)'로 정했다. 세계 물의 날을 맞이해 제주의 물 문제를 생각해 본다.

제주는 내륙과 멀리 떨어져 독립된 유역을 이루고 있어 물 이용 때문에 다른 지역과 갈등이나 분쟁이 생길 소지가 없다. 이는 지역의 여건과 특수성을 반영한 물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제주도 고유의 물 환경, 즉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다른 무엇일까?

우선 강점부터 살펴보자. 제주도는 지질학적으로 젊고 신선한 다공질 용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높은 지하수 함양률(40~45%)을 자랑한다. 또 평균적으로 연간 40억톤에 달하는 많은 비가 내려 지하수로 보충되고 있다. 특히, 인위적 영향을 받지 않는 제주지하수는 약알칼리성의 경도가 낮은 부드러운 물이며, 총용존고형물 함량도 낮아 맛있고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몇가지 사항은 국내 다른 지역에는 없는 제주만이 보유한 차별적 요소로서 제주도민의 큰 자긍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물 환경은 강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취약성도 공존한다.

우선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기 때문에 지속 이용 가능한 수자원 부존량이 유한하고, 지하수를 지나치게 많이 퍼 올려 이용할 경우 해수가 침투할 가능성이 잠재한다. 게다가 토양층이 얇을 뿐 아니라, 물이 스며들 수 있는 틈들이 많은 암석(용암)으로 이뤄져 있어 오염물질이 빗물과 함께 지하로 빠르게 침투해 지하수를 오염시킬 우려가 높다. 연평균 강수량은 2600㎜에 달하지만 몇년에 한 번씩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고 있으며, 동부 해안지역에는 담수지하수와 바닷물이 섞인 기저지하수가 이 지역이 형성될 당시부터 부존하고 있다.

물관리의 핵심은 수량과 수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고, 관리조직을 설치하고, 조사·연구와 감시체계를 구축해 운영한다.

제주의 물관리는 앞에서 언급한 제주 물 환경의 장단점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강점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고, 취약성은 극복하거나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과 대책이 수립·시행돼야 한다.

10여년 전부터 제주지하수의 3대 위기론(지하수위 하강, 해수침투, 지하수 오염)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하수 오염 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대응책이 보이질 않는다. 도 전역의 오염실태가 비교적 상세하게 드러나 있지만 관측망 설치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달 오영훈 도지사가 부서간 협업과 지역농협, 마을리장, 영농회장 등 민·관 협력체계를 통한 실질적인 지하수 오염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기회에 제주지하수가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시금석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이 있어도 사람이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오염돼 있다면, 수자원의 가치를 상실한 폐수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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