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비상임 논설위원·전 제주관광대학교 부총장

제주에 살다보니 괸당문화가 참 좋아보일 때가 많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서로 가근한 제주 사람임을 확인해 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 좋은 점이 많은 괸당문화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괸당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남용하거나 심지어 악용하는 만물박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주변 사람들에 대한 족보는 물론 집안 분위기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깊게 아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만물박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만물박사란 한가지에 정통한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주에서는 만물박사라고 부르면 꽤나 인정받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지는 모양이다. 요즘 같은 선거 때가 되면 어설픈 괸당들이 난무하는 것 같다. 상대가 좀 못마땅하면 궤변을 섞어가며 아닌 말을 만들어 낸다. 상대의 조상이나 집안을 비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 아버지가 밥을 잘 안사서 아들이 그 모양이 됐다는 둥, 누구 아버지가 우리 고향에서 건축공사 시킬 때 업자에게 돈을 늦게 주는 습관이 있어 아들이 정계에 못 나온다는 둥, 누구는 술을 너무 좋아해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둥 근거없는 막말이나 거짓말을 붙여가며 악평을 해댄다는 것이다. 또 몸이 좀 불편해서 대학병원에 갔다가 아는 분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뒤로 누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해지고, 그 소리를 옆에서 귀동냥해 들은 사람은 누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둥 뜬소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좁은 제주도라 그렇다는 변명을 하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육지에서 사는 제주 사람들도 생겨난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없는 말을 보태가며 미사여구로 그를 칭찬하고 대변하는 괸당들도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 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에게 자존감이 있게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전해 듣는 사람 모두 자존감의 주체인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자존감은 글자 그대로 자기를 스스로 존경해 주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존중하는 만큼 남도 자기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말로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우스갯소리로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상처를 줘서는 안된다.

좁은 제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빌미로 남에 대해 아는 척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것, 또 남에 대해 신문기사까지 봐가면서 관심을 갖는 것은 과유불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객관적인 장점만을 아낌없이 말해주는 그런 진정한 친척다운 괸당문화의 본질적인 정서를 스스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을 존중하고 존경하면 나도 존경받게 된다는 순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춘추시대 노자(老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지껄이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품위있는 자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제주에서 상대에 대해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묻는다. "그 분하고 가근한 괸당이꽈?" 그러면 되돌아오는 답변은 "무사마시! 제주사람은 다 괸당 아니꽈게"다. 너무 무책임한 답변이라 여겨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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