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향 비상임 논설위원·세계자연유산해설사

산이 섬을 품었는가, 섬이 산을 품었는가. 섬(島)이 산(山)을 품었으니 제주는 산행(山行)보다 더 큰 섬행(島行)을 해야 하는 섬이다. 은하수를 붙잡을 만큼 높은 산이라 은하수를 뜻하는 한(漢)과 붙잡을 라(拏)를 써 산의 이름이 한라산(漢拏山)이다. 한라산이 곧 제주라 불리는 섬(島)이고, 제주라 불리는 섬 그 자체가 곧 한라산이다.

지금까지 산의 허리에서 산을 올랐다. 제주의 창조주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지으며 산의 시작을 바다에 뒀는데 말이다. 오늘은 제주 섬(島)의 북쪽 끝 영주십이경(瀛洲十二景)의 제12경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의 모습이 있는 취병담(翠屛潭) 바다 못에 손을 담그고, 제주시를 가로질러 1100도로에 들어 어리목으로 윗세오름에 올라, 백록담남벽을 거쳐 평궤대피소를 지나 돈내코로 산을 내려와 5·16도로에 들어 서귀포시를 가로질러 영주십이경의 제4경인 정방하폭(正房夏瀑) 바닷물에 손을 담그는 섬행(島行)을 하려고 한다. 섬의 중턱에서 섬을 오르니 산행이고, 섬의 끝에서 섬을 오르면 섬행이다. 섬이 한라산을 품었으니 산행은 산을 오르는 것이고, 섬행은 제주 섬을 오르는 것이다. 산행이 더 큰가, 섬행이 더 큰가. 취병담 바닷물(해발 0m)에 손을 담그고, 새벽 3시부터 섬행을 시작한다.

한천의 끝 취병담 바다못에 손을 담그고

한라산의 북쪽에서 가장 큰 하천이 한천(漢川)이다. 제주시를 가로질러 1100도로를 걸어 어리목광장(해발 930m)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가 조금 모자라다. 이곳까지 거리가 약 17㎞쯤 되리라 생각했고 아침 8시경에 도착하겠지 생각했는데 이곳까지 거리가 18㎞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8시50분에 어리목탐방로에 들어 사제비동산에 도착을 했다.

백록담 서북벽을 향해 나란히 서 있는 오름 셋이 너무나 선명하다.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 이 오름 셋을 통틀어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데서 윗세오름이라 한다. 윗세오름 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20분이다. 23㎞를 걸어왔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 산장에 들어가기가 싫다. 필자가 오늘 걷고자 하는 섬행의 반을 걸었다. 지금 시간이 12시, 섬행의 반을 걸으며 9시간을 걸었으니 '나머지 남은 반의 길은 하산의 길이니 6시간 정도가 걸릴까? 오후 6시경에 정방폭포에 도착하겠구나' 백록담의 서북벽의 돌주름이 다 보일만큼 하늘이 너무나 청명하다.

평궤대피소 위 넓은드르에 우뚝 솟은 백록담 남벽
평궤대피소 위 넓은드르에 우뚝 솟은 백록담 남벽

지금 바라보는 서북벽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이곳은 보호구역으로 오를 수 없다. 섬의 남쪽 바다가 보인다. 산방산과 가파도의 모습이 보이고 국토 최남단 마라도의 모습이 선명하다. 구상나무 솔향이 콧속 깊이 들어온다. 한라산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숲을 갖고 있다.

구상나무꽃 한라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숲을 갖고 있다.
구상나무꽃 한라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숲을 갖고 있다.

길은 평궤대피소를 향한다. 넓은 평원에 바위그늘(궤)이 있어 이 대피소의 이름이 평궤대피소이다. 산을 다 내려왔다. 범섬, 문섬, 섶섬, 제지기오름, 지귀도의 모습이 보인다.

돈내코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0㎞만 걸으면 정방폭포에 도착하지 않을까. 5·16도로에 도착 했다. 서귀포 칼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필자는 오늘 섬행(島行)이라는 새로운 길을 걸었다. 지금 시간이 오후 6시 정방폭포에 도착했다. 15시간 동안 42.2㎞, 6만3860보를 걸어 섬을 넘었다. 백록담을 오르는 산행보다 제주섬을 오르는 섬행(島行)을 제안한다. 이게 제주섬이다.

소정방폭포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소정방폭포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용연야범에 손을 담그고, 정방하폭에 손을 담그고.
용연야범에 손을 담그고, 정방하폭에 손을 담그고.
15시간 동안 6만3860보를 걸어 제주섬을 넘었다.
15시간 동안 6만3860보를 걸어 제주섬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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