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유채꽃으로 무장한 봄의 전사들이 거리 가득 흩어지고 있다. 동면(冬眠)의 긴 터널을 뚫고 피어난 희디흰 생명들이 계절의 클라이맥스를 더듬고 있다. 바야흐로 화사한 탄생의 시간이다. 작년 이 맘 때였던가.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는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영사로 재직하며 시작 활동을 한 칠레의 시인이다. 그의 시 ‘내면의 적’에서 나는 젊은 영혼의 고독과 방황, 열림과 닫힘 사이에 존재하는 제 3의 공간을 본다.

“나의 확신에는 나를 흔드는 적이 있다 / 눈물의 바로 그 원천에서 자라는 적 / 가시가 무성한 질긴 나무, 쓰디쓴 잎이 열 지어 매달린 나무처럼…”

춥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젊은 영혼들, 쓰디쓴 잎을 열 지어 매달고 봄날의 개화를 기다리듯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고독, 무엇이 그의 삶에 내면의 적으로 와 닿았던 것일까.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요즘, 안개의 틈을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꽃잎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것은 아마도 꽃잎의 핏줄 안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강물과도 같은 수많은 인고와 고독의 시간. 네루다의 시를 통해 보았던 내면의 적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겨야 할 수많은 적은 바로 내면의 적이고, 그 투명하고도 견고한 벽을 허문 자만이 네루다의 시 ‘아도니스 천사’의 품에 안길 영광을 부여받는다.

“오늘은 순수한 아가씨 곁에 누웠습니다 / 하얀 대양의 바닷가에, / 넓은 공간에 있는 끓는 별의 한가운데 눕듯 // 기나긴 그녀의 초록색 눈빛에서 나오는 / 빛은 마른 물처럼 떨어졌습니다 / 시원한 힘을 가진 투명한 깊은 / 동그라미로”

내면의 적을 잉태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마른 물처럼 떨어지는 빛을 향해 봄의 향연 속으로 몸을 던질 때가 왔다. 가장 아름답게 필 수 있을 때, 마음껏 몸을 날려 꽃눈을 내리게 할 희망이 멀지 않았음을 얘기하고 싶다. 만개한 꽃밭 위를 구르는 언어들이 다시 동면(冬眠)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새롭게, 변화될 봄을 꿈꾸며.<김지혜·한국문학도서관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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