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제주4.3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화두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책임론이다. 본지는 이미 4.3특별취재를 통해 4.3의 원인제공에서 진압과정에 이르기까지 미군정이 깊숙이 개입했고 미국이 윤리적·법률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왔다. 이는 민간인 대량학살(제노사이드)과 잔혹 행위를 빚어낸 초토화작전이 미군CIC장교에 의해 주도됐고,1949년 6월말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가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있었던 점등에서 증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채택된 정부차원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도 4.3의 발발과 진압과정에서 미군정과 주한미군군사고문단의 개입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제주4.3항쟁과 동아시아 평화’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미 석학들은 매우 주목되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들은 제주4.3 전개과정에서 빚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 미국이 법률적·정치적으로 확실한 책임이 있으며, 이에 대한 국제적인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교수는“미국은 법률적으로 제주 4.3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갖는다”고 결론을 내린 건 의미가 깊다. 그는 논거로 당시 우익테러단체와 경찰에 대한 지원, 대학살 작전의 통제권,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 행사 등 미 군사자문위원회의 역할이 미국 자료에 나타나고 있음을 들고 있다.

또한 세미나 참석자들은 미국의 책임 문제에 적극 동의를 표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민간차원의 정보공유와 협력을 다짐했다는 점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이제 미국의 법률적 책임에 대해 국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해결의 가닥을 찾아야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미국이 어떤 형태로 제주 4.3에 대해 도덕적·법률적·정치적 책임을 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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