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녹두서평」에 발표‘필화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1948년 4월 3일/ 제2의 모스크바/ 밤마다 먼저 간 동지들의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한라산/ 그 눈 덮인 산하/ 붉을 피를 흘리며 끝내 숨져간/ 이름 없는 해방전사들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내 이어지는 저 붉은 핏자국을/ 누가 잊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가!”(‘서시’일부)
지난 87년 봄 사회과학 무크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시인 이산하(43)의 장편서사시「한라산」이 16년 만에 공식적으로 복원 출간됐다.

장시 「한라산」은 ‘그날의 폭도들에게 바치는 헌사’로부터 시작된다.

서시에는 4·3의 비극을 예고하는 한반도의 정국을 담은 비장한 전주곡이 울린다.

4장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1장 ‘정복자’, 2장 ‘폭풍전야’, 3장 ‘포문을 열다’, 4장 ‘불타는 섬’으로 이어진다.

그가 87년 「한라산」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우연히 입수하게 된 「제주도 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김봉현·김민주 공저)에서 였다.

“집에 돌아와 밤을 새워 읽었는데, 한 마디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미군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군경토벌대와 서북청년단의 잔혹한 양민학살과 만행은 나의 존재와 의식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으나, 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 특집으로 다룬 「녹두서평」의 맨 앞에 실린 「한라산」은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다.

예상했던대로 출판사는 초상집으로 변했으며, 다른 필자들도 유탄을 맞아 대부분 수배됐다.
그 후 이씨 역시 오랜 도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 해 겨울 이른바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다.
그리고, 90년 석방 이후, 처음으로 제주땅을 밟는다.
그는 제주에서 2년을 지내며 책에서만 보았던 것을 직접 당사자의 입을 통해 확인했던 것은 서로가 쓰라린 고통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말한다. ‘똑똑한 사람들은 다 죽고 나 같은 쓰레기들만 살아남아 연명하고 있다’ 또 그들은 말한다. ‘아무데나 질러대는 총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것도 죄가 될 수 있는가’”
시학사. 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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