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뒤늦게 교육감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한 예비후보는 돌연 출마를 포기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학교운영위원마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한장’은 줘야 도와줄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한장’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지만 교육계 수장의 꿈을 접어야할 정도였다면 결코 ‘작은 한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같이 그동안 풍문으로만 나돌던 학운위원들의 돈거래는 경찰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돼 충격을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백명이 후보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고 이중 상당수가 그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4명의 후보들로 부터 모두 돈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후보들에게 손을 벌린 유권자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던 운영위원과 교원들이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어서 교단의 분노도 더 큰 것같다.

따라서 경찰은 불법선거를 자행한 후보들 못지않게 돈을 받은 유권자들도 엄단해야 마땅할 것이다. 누가 신성한 한표를 돈으로 먹칠해 교육계를 들쑤셔놓고 있는지, 옥석을 철저히 가려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그러잖아도 대검은 4·15 총선을 앞두고 돈받은 유권자를 무조건 처벌토록 하고있다. 선거와 관련해 돈을 받은 유권자는 액수에 상관없이 사법처리하는 한편 30만원 이상을 받은 유권자는 모두 구속한다는 것이다. 또 유권자들이 받은 돈은 100배로 벌금을 물려 반드시 거둬들인다는 방침이다.

그런가하면 제주도교육청도 인사비리및 불법선거와 연관된 직원들은 전원 응징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경회 부교육감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깊이 사죄하면서 “연루된 비위직원들에 대해서는 제주교육 전체를 위해 엄벌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은 느닷없이 돈받은 유권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놓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처벌대상이 예상외로 많아 수위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더기 사법처리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과 충격파가 부담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론적인 얘기지만 선거사범에 대한 사법처리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정인을 억지로 엮으러 해서도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벌대상이 많다고 타협하는 식으로 적당히 처리해서도 안된다. 자칫하다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시비를 자초할 수가 있다.

또한 유권자에 대한 정상참작은 돈선거의 싹만 더욱 키울 뿐이다. 아직도 선거때 돈을 먹지 못한 사람만 바보 취급당하고, 또 사회지도층 인사들조차 선거와 관련된 돈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오랜 악습과 관행으로 자라온데다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 기회에 돈받은 유권자가 더 나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썩은 정치판을 확 바꿔야 한다. 돈받는 유권자가 있는 한 금전선거의 악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경찰의 이번 수사는 돈선거를 뿌리뽑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이렇게 정다시고도 돈선거가 재발되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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