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제주는 태풍의 길목이다. 바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엊그제 치러진 6·5 재보선도 그랬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도지사와 제주시장에 나란히 당선됐다.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한나라당 열풍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전국적으로 일방적 승리를 올렸다.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던 지난 4·15 총선과는 대조적이다. 50일새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후보등록을 앞둔 지난달 초만 하더라도 여당에는 공천희망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도지사후보에만 6명이나 줄을 섰다. 또 제주시장후보로는 무려 8명이나 도전장을 내 치열한 국민경선을 치러야 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의 높은 인기도 때문이었다. 최근까지도 여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보다 갑절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다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호남표’와 집권여당의 프레미엄까지 얹혀져 공천경쟁을 더욱 부추겼던 것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에는 줄을 서는 후보들이 많지 않았다. 후보등록 마감일을 연장까지해봤지만 인물난은 여전했다. 그래서 공천경선도 없이 두곳 모두 단수후보로 낙점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특히 김영훈 제주시장의 당선은 주목할 만하다. 역시 ‘선거는 깨봐야 안다’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양당의 ‘러닝메이트’들은 서로 비슷한 면이 많았다. 여당후보들은 ‘선거초년생’이었지만 야당후보들은 모두 선거를 많이 치러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인지도면에서도 또 앞섰다. 여기에다 준비기간도 여당후보에 비해 많았다. 여당후보들은 겨우 선거 20일전에야 후보로 확정됐다. 야당후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이미 전투에 나서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야당이 전국적으로 승리를 거뒀다고는 볼수 없다. 무엇보다 민심의 승리로 보는게 옳다. 민심은 항상 준엄하다. 또 상황을 꿰뚫어 볼줄 아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아니라 민심은 바람같은 것이다. 지지하다가도 뒤틀리면 언제라도 휙 돌아서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민심은 그렇게 심판한 것이다. 총선이후 여당은 승리에 취해 갈팡질팡했다. 개각 파동에다 차기 대권주자들의 자리다툼, 고건 총리에 대한 제청 압박등으로 갈등이 커졌다. 김혁규 총리카드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마찰도 한수 더했다.

지역적으로는 APEC 제주유치 무산에 따른 반발도 한몫했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 3석 모두 여당에 몰아줬는데 정작 돌아온게 뭐가 있느냐”는 배심감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선자들은 부산유치가 아니라‘분산유치’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제주민심을 더욱 성나게 했던 것이다.

이제 여당은 참패이유를 다른 데로 돌리려 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들의 말처럼 과반수 의석에 대한 국민의 견제심리도 발동했을 수 있다. 또 투표율이 크게 낮은 데도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답은 하나다.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변명을 둘러대봐도 민심은 곧 천심이다. 그것은 불변이다. 민심은 조금만 잘못해도 용서치 않는다. 민심을 무섭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교훈이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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