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빌레물·영서생이못(한림읍 대림리)

 한림읍 대림리하고도 양지빌레물에는 물장군이 산다.물장군은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종 곤충이다.

 어디 이뿐이랴.물자라·장구애비·송장헤엄치게·물방개·개구리 등도 눈에 띈다.

 농경지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못 대부분이 농약 등에 의해 오염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물장군이 아직도 이곳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무척 신비롭다.끈질긴 자연의 생명력을 실감하게 된다.

 양지빌레는 대림리 863의 2번지 일대의 암반지대를 일컫는다.대림리 마을지에 따르면 이 일대는 고려시대 당시 가좌(加座)포구(현재 수원리 용흥동포구)를 통해 조정에 진상되는 소와 말들이 잠시 방목되던 곳이었다.

 가좌(加座)는 지형이 둥글고 평탄해 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며 양지빌레물은 당시 우마용 음용수를 대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생곤충류를 좀더 자세하게 조사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못 가운데로 다가간다.못바닥이 뻘 상태라 스펀지처럼 푹신푹신 하다.

 주요 서식식물로는 마디풀과의 여뀌·개여뀌와 말·가래(이상 가래과),개구리밥(개구리밥과),마름(마름과),올챙이솔(자라풀과),큰골(사초과) 등이 있다.

 이 마을에 사는 부창호씨(50)는 “양지빌레물은 자연못인데다 인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비교적 수질이 깨끗한 편”이라면서 “옛날에는 멀리 귀덕1리 신서동 주민까지 이곳에 와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마을에서 양지빌레로 이르는 길이 농로 확장과 함께 시멘트로 덧씌워져 있지만 과거에는 우마차 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구불구불 황토길이었다.

 개발이 더딘 탓에 빛나는 자연이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비교적 잘 남아있는 듯 싶다.

 못 동쪽에는 이제 막 수확을 앞둔 누런 보리밭이,북쪽에는 소나무 숲이 있다.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왜가리·쇠백로 등이 날아오를 때면 양지빌레물과 보리밭,소나무숲이 한데 어우려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양지빌레물에서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영서생이못이 있다.

 못 크기는 원래 120평가량 됐다.최근 더운 날씨 탓인지 붉은 연꽃이 앞다퉈 피어났다.

 연꽃이 핀 못은 탈속(脫俗)의 공간이다.두 어깨에 진 세상의 시름과 욕심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없을까.잠시 걸음을 멈춰 소담스럽게 핀 연꽃을 바라본다.

 인근에서 비닐하우스 작업을 하던 양복성씨(46·한림읍 대림리)는 “연꽃이 만발하면 장관이다.붉은 연꽃이 주변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옛날에는 못이 2개였고 꽤 컸다.어렸을 적 여름철 이곳에서 물놀이를 할 때면 깊이가 1∼1.2m가량은 족히 됐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영서생이못에 얽힌 전설 한 토막.

 ‘1790년께 영암 이생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갓을 팔러다니다가 장사가 안돼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잠시 쓰러져 자고 있을 때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김상원이라는 사람이 이생원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됐고 마을사람들을 소개해 갓을 팔아줬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김원용의 부인이 사망하자 이생원이 나타나서 장지를 지금의 영서생이못 북쪽으로 정해주고 머지않아 이 앞에 못이 생기면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묘 주변은 집지을 때 요긴하게 쓰는 누런 찰흙이 많았다.마을사람들이 누런 찰흙을 파다 집을 지을때마다 쓰다보니 못이 자연스레 생기게 됐다.이생원의 예언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약 200년의 역사를 지닌데다 붕어가 살기 시작한지 오래이고 그동안 퇴적된 흙이 많아 물 빛깔이 혼탁한 편이다.

 그러나 물이 꽤 깊어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 이곳에는 개구리·소금쟁이·송장헤엄치게·물자라 등이 서식한다.

 못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다.못 한켠에는 북제주군에서 세운 안내문이 있다.‘이 못은 조상의 얼이 깃든 곳’이라며 ‘깨끗이 보존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러나 1년 가까이 쓰러진 채 방치되고 있다.그 모습이 마치 못의 운명처럼 느껴져 무척 안쓰럽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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