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남단 지방자치단체인 서귀포시. 거기의 강상주 시장이 지난주 작은 함성을 질렀다. 대 중국을 향해서이다. 올림픽 열기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한 것은 서귀포시가 처음이다. 강시장은 ‘고구려 역사 왜곡의 부당함’을 담은 서한문을 중국의 삼아시와 용구시에 보낸 것이다. 이들은 지난 99년부터 서귀포시와 우호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자매결연도시이다.

강 시장은 서한문을 통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양국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으로 파생되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 국가의 선린우호와 상호신뢰를 지탱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은 서로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중국정부의 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소원해질 수 있는 양 도시간의 관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방정부가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르게 견지해야 한다”며 올바른 역사교육을 부탁했다.

이같은 강시장의 서한은 내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시기적으로 어수선한 때라 더욱 그런 모양이다.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지금 한풀 꺾여 있는 상태다.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에 밀려 잠잠해지고 있다. 여론의 냄비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과거사 문제에만 기를 쓰고 있는 형국이다.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총대’를 매려하지 않고 있다. 야당도 언론도 정부만 추궁할 뿐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강시장의 서한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사실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는 국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더욱이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정부차원에서만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외교적인 갈등과 마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적이기보다는 학술적이고 객관적으로 푸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민간차원의 충실한 연구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같은 맥락에서 강시장의 항의서한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꿈틀거리기 시작한 ‘고구려역사 찾기 운동’에 윤활유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들의 잠재된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정기에 관한 문제에는 국민들의 응집된 힘과 의지가 한데 모아져야 한다. 세계의 여론을 환기시킨 3·1만세운동도 민중들의 자발적 힘으로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한방울의 빗줄기가 모여 대하를 이루는 법이다. 또 하나의 밀알이 황금들판을 만든다. 작은 함성 하나 하나가 모여 전국방방곡곡을 메아리치게 한다면 중국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중국 지방정부에 대해 제각각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노력을 쏟는다면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물론 고구려사 왜곡은 중국 마음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곧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논쟁이 장기화되면 양국의 선린우호관계에 금이 갈 우려가 높다. 따라서 사태가 더 꼬이기 전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강건너 불 구경’할 때가 아니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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