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지사가 제주시장 시절, 시의원들이 붙여준 닉네임이 있다. ‘심해상어’이다. 깊은 바다에 사는 상어라는 것이다. 열길 물속처럼 도무지 속내를 알수 없다는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사실 김지사는 웬만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주로 남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시정질의 때도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하지않는다. ‘연구·검토’하겠다는 식으로 적당히 위기를 넘길 때가 많다. 예민한 사안은 더욱 신중하다.

사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원인이 이것 저것 목청을 높여 얘기해도 빙그레 웃음만 짓곤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데 한참 애를 먹는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종잡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6·5 도지사 선거때도 그랬다.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건넌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예리한 질문들을 비켜나갔다.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다.

지금 제주사회의 현안과제로 대두된 행정계층구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혁신안이든 점진안이든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주 느닷없이 변화된 속내를 드러냈다. 특별자치도와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분리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민투표도 올안에 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12월 주민투표 방침은 불변”이라던 공언을 스스로 뒤엎은 것이다. 시장·군수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논리’에 발목이 잡혔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김지사는 끝내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한 소신만은 밝히지 않고 있다. 도민에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이 좋아 주민투표지, 그것은 도민에 책임을 떠넘기는 처사이다. 제주도가 지향하는 대안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어떻게 주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할수 있겠는가.

그러잖아도 대다수 도민들은 행정계층구조 개편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지난주 제주MBC의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가 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비뽑기하듯 둘중에 하나를 고르게 한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상식적으로도 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단순한 찬반투표가 타당하다. 사리분별이 어려운 무학자와 노령자들에게 사지선다형 식으로 어렵게‘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투표를 하는 사람가운데는 지식인만 있는게 아니라 ‘까막눈’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는 하나의 최적 단일안을 마련해서 찬반 토론을 벌인후 주민투표에 부치는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논쟁과 혼란으로 인한 도민사회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할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김지사는 행정계층 개편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 도민합의를 이뤄내는데 힘써야할 것이다. 김지사가 최종적으로 단일안을 마련한뒤 “도민들이 뽑아준 도지사를 한번 믿고 지지해줄 것”을 도민들에게 신임을 걸고 호소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수도 있다.

아무리 여론을 떠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중차대한 정책의 결단을 유보하는 것은 도지사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난관에 부딪힐수록 지휘관의 의지와 언행은 확고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도민들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결집시켜 나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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