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넘기면서 언론마다 ‘올해의 제주10대 뉴스’를 선정했다. 그중 ‘최악의 경기침체’가 상위권에 진입했다. 매우 드문 일이다. 때맞춰 신문들은 이와 관련된 기획기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더 이상 견딜수 없는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불황으로 인한 고통은 제주만 겪는게 아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제주가 유별나게 더욱 심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들이다.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곡소리로 바뀌어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제주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런 저런 시책들도 백출하고 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이다. 거의가 구호로만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요구와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자치단체들이 경제를 살린답시고 떠벌리는 행태를 돌아보라. 재래시장 활성화니, 중소기업지원 강화니, 겉포장만 번지르르 하다. 뜬 구름 잡기식이다. 상투적인 단골메뉴들이 재탕 삼탕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경제마인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서민들처럼 불황을 뼈저리게 실감하지 못한다. 요즘같은 불황에도 어김없이 고액의 봉급이 제때 나오기 때문이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그들에게 서민의 입맛에 맛는 경제회생대책을 기대하는 것자체가 무리인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제주경제의 장기침체는 ‘돈맥경화’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소비가 침체돼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시가 뒤늦게나마 소비진작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제주시는 그간 금지해온 선물주고 받기와 외식 및 쇼핑하기 등을 직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격세지감이다. 그런가하면 제주조달청이 전직원에게 10만원을 지원, 점심 외식하기·지역특산물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신선한 발상이다. 현실성이 높아 효과도 클 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소비를 되살리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갑을 열게하여 꽁꽁 얼어붙은 경기를 녹여야 한다. 소비가 살아나서 돈이 돌아야 생산과 투자로 이어지고, 그래야 비로소 고용도 늘어 실업문제도 해소되는 것이다.
소비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소비심리 회복을 통한 내수활성화가 절실하다. 따라서 정부나 자치단체도 부유층들이 눈치보지 않고 돈을 쓸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정글의 동물들도 주변이 불안하면 사냥을 하지않고 동태를 살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전망이 불투명하면 소비자들은 결코 지갑을 열지 않는다.
따지고보면 대한민국처럼 부자에 대한 적대감이 많은 나라는 드물 것이다. “돈 좀 있다고 까분다”는 욕은 예사이다. 김영삼 정권시절에는 부자가 고통스런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부자들이 돈을 풀어야 가난한 서민들도 먹고 산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이 골프를 치거나 양주를 마신다고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양주를 마셔도 국산만 마시면 그돈은 제조회사에서 판매회사, 술집, 사우나, 세탁소, 그리고 동문시장 좌판상 등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돌아간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적극 권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옛말에도 ‘차려놓은 음식은 먹어주는게 부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비가 미덕인 시대이다. <진성범ㆍ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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