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실시하는 주민투표는 헷갈리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전국 처음으로 시행하는데다 주민투표법이 애매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선관위의 유권해석마저 현실과 동떨어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목적은 자명하다. 주민의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지역의 중대현안을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행정계층개편을 위한 제주도민 투표는 벌써부터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첫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미비한 점이 너무 많다.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아리송하다. 이렇게해서 과연 도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투표율이다. 주민투표법은 투표자의 1/3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투표결과에 대한 신뢰도와 정당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때문에 선거업무를 관장하는 선관위나 제주도는 투표율을 끌어올리는데 올인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선관위는 공무원의 주민투표 독려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무원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라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가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한데는 이유가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정작 공무원들에게는 투표홍보에 나서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그렇지않아도 본도의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제주시장 보선과 함께 실시된 도지사 재선거는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작년 10월 치러진 용담∼외도지역 제주시 제4선거구 도의원 보궐선거에는 5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였지만 투표율은 37.5%에 머물렀다.

이런 추세로 본다면 이번 주민투표율도 마지노선을 넘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인물을 뽑는 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혈연과 학연 지연등 연고주의도 작용하지 않게돼 투표율은 개표기준에도 미달될 공산이 크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20억원의 막대한 예산만 날려버리는게 아니라 도민사회의 엄청난 후폭풍도 우려된다.

재론되는 얘기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제주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따라서 가급적 많은 도민들이 투표를 통해 의사를 표명토록 적극 홍보해야할 것이다. 그런데도 선관위가 주민투표 독려를 위한 공무원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는 것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 하지않을수 없다.

도선관위는 “조직적인 투표운동이 안된다는 것이지 개인차원의 투표권유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것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직적이란 개념과 범위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걸어다니는 선거법’으로 불리는 임좌순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뒤 이렇게 실전소감을 피력한바 있다. “심판때는 몰랐다. 하지만 직접 선수로 뛰어보니 법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무리 정신이 좋아도 지켜지지 않는 제도라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선관위는 이제라도 공무원의 발목을 풀어줘야 한다. 선관위 혼자서만 투표율을 올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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