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주민투표는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행정구조개편을 주도해온 제주도는 그야말로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복잡한 처지이다. 투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한데다 지역별로는 2대2로 비겼기 때문이다.

우선 투표율이 간신히 마지노선에 턱걸이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와서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과연 도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그런데도 도가 제주미래의 운명을 분란없이 결정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도민공감대와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시장 군수들은 주민투표의 정당성과 대표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계층구조개편을 유보해주도록 건의하고 있다.

사실 8만여명의 지지만으로 계층구조개편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는데는 무리가 따를수도 있다. 그래서 오영교 행자부장관뿐만 아니라 김태환 지사도 선거전에 “투표율이 50%는 넘어야 진정한 민의를 확인할수 있다”고 강조한바 있다. 그런 김 지사가 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두고 “도민의 자치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한 것은 언어도단이지만 거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김 지사는 개표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단위의 재 맑 투표율을 상회했고, 4개 시군 모두 법적요건을 충족했다”고 말했다. 투표율에 구애받지않고 혁신안을 그대로 밀어부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도민들의 준엄한 명령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지역간의 양극화 현상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4개 시군에서 다같이 혁신안을 선택해도 투표율 저조로 탄력을 받기 어려운 판에 산남 2개 시군이 등을 돌림으로써 도는 엄청난 부담을 지게된 것이다.

이번 투표를 통해 산남 주민들은 기초자치단체 폐지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제주시민의 ‘입맛’에 따라 통폐합될 운명에 처하게된 것이다. ‘머릿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제주시 지역이 압도적으로 혁신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남 주민들로서는‘강제합병’이라고 반발할만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이유있는 항변’으로 끝날수밖에 없다. 공감은 되지만 투표결과를 수용하지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소 억울하고 불만이 있더라도 심판판정에 복종해야 한다. 그게 다함께 후폭풍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러잖아도 혁신안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산넘어 산이다. 이미 시장군수들은 권한쟁의 청구소송을 제기중이다. 또 위헌소송까지 준비중이어서 법정공방이 뜨거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뿐만 아니다. 혁신안이 시행되려면 제주특별자치도 특례법에 반영돼야 한다. 국회 의결이란 마지막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조한 투표율과 산남지역의 반란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운 타지역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게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난관을 헤쳐나가는데는 도민 대통합과 역량결집밖에 없어 보인다. 이는 선거로 인해 빚어진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처방이기도 하다. 도민 모두가 깨끗이 선거결과에 승복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장 군수들도 말로만 도민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할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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