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뜻밖에도 위미지역에서 유치물결이 일더니 반대했던 화순지역에서도 찬성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도내 32개 사회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범도민유치위원회가 본격활동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김태환지사의 ‘해군기지 논의중단 선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막무가내이다. 본래부터 그의 선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을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김지사의 선언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해군당국에 건설중단을 촉구하는 것도 아니고, 도민들에게 논의조차 하지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이고 독선적 발상이다.

지금이 어느때인가. 대통령한테도 할말은 다하고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도지사가 조용히 하라고 한다해서 도민들이 입을 다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도가 나서서 논의를 하라 말라 ‘선언’할 성격이 아니다.

알다시피 해군기지 건설의 시행주체는 해군당국이다. 여기에 지역주민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반발해온 것이다. 하지만 정작 김도정은 여태껏 가타부타 말도 없이 눈치만 살펴오지 않았던가.

그런 김도정이 마치 심판이나 된 것처럼 느닷없이 논의중단을 선언한 것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일이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단을 선언하려면 시행주체인 해군당국이 하는게 합당하다. 도는 백번 선언을 해봐야 아무런 구속력과 실효가 없는 일이다.

뿐만아니라 시기선택도 잘못됐다. 왜 하필이면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논의를 중단하자는 것인가. 다분히 정략적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물론 김도정은 행정계층개편에 올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달았다. 행정력을 하나로 집중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도가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해왔기에 그런 이유를 내세우는가. 또 만일 지방선거가 내년에 없다면 어떻게할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책임회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도정의 의도대로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논쟁의 물꼬를 다시 튼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갓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걸음마도 걷기 전에 해묵은 해군기지 논쟁으로 휘청거리고 말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럴만큼 파괴력이 없는 것이라면 굳이 해군기지 논의를 지방선거이후로 미룰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해군기지는 언제 하더라도 논쟁이 불가피한 ‘뜨거운 감자’이다. 아무리 도가 입을 막고 귀를 막는다해도 잠잠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되레 더욱 복잡다난한 지역간 대립양상으로 치달을 우려가 높다. 이미 해군은 위미항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고 하지않는가.

따라서 이렇게 첨예하게 달아오르는 민감한 사안은 오히려 더욱 활발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자유로운‘여론의 시장’에서 광범한 토론과 검증을 통해 모범답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 또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게 바람직하다. 도민사회의 건전한 논의마저 시끄럽다거나 갈등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어차피 결론을 내야할 현안이라면 질질 시간을 끄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국가적으로도 중차대한 문제를 무작정 방치해둘 수는 없는 일이다. 잠복기간만큼 화만 더 키울 뿐이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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