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지사가 ‘말 죽은 밭’에 갔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적(私的)모임 참석을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위반 혐의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선관위는 김지사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률적으로만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정서적 도덕적 상식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근무시간에 법적으로 금지된 사적모임에, 그것도 불법적으로 이뤄진 말추렴에 도백이 참석한다는 것은 법적 책임만 추궁할 일이 아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법을 어겨서가 아니다. 정제되지 않은 말 때문이다.‘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식의 막말이 그의 인기와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만일 노대통령이 이같은 막말을 넘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어떨까. 물어보나 마나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이다. 특히 불법적인 말추렴 같은 곳에 쫓아간다면 여론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일부 신문들은 그의 체면머리 없는 상식이하의 행동을 매섭게 나무랄지 모른다.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댓글을 올려도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는 욕설이 쏟아지는 판국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면 제주는 역시 마음좋고 인심좋은 고장이다. 도정을 견제·감시해야할 도의회마저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하는 소리이다. 이게 들어도 못들은체 할만큼 그렇게 하찮은 일인가. 아직도 사건의 중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눈 한번 찔끔 감아주는 것인지 의문이다.

김지사가 말추렴에 간 것은 언제인가. 지난 2일, 바로 제주의 백년대계라는 특별자치도 관련 3개법안이 국회에서 난상토론을 벌일 때다. 그래서 김지사는 이보다 앞서 “두 부지사와 실국장들을 서울에 상주시켜 대중앙절충을 강화하겠다”고 언론을 향해 목청을 높였었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은 이렇게 긴박한 시간에 이장단 틈에 끼어 허송한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놓고 직원들에 대해서는 근무시간에 경조사 등을 돌아보지 말라고 떳떳이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에 대해 김지사는 농심탐방을 하다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는 도선관위에 제출한 경위서에서 “감자 파동을 겪고 있는 대정지역을 돌아본후 한경면 상황도 알아보기 위해 이장협의회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결과 이장단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번 양보해서 김지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설득력이 약하다. 농정실태를 돌아보는 것은 일선 군수들의 1차적인 몫이다. 그보다도 도지사는 서울에 올라가 한푼의 예산이라도 더 따내기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한다. 또 특별법의 연내 통과를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한다.

만일 그가 표를 먹고 살지않는 관선 임명직 지사였어도 그 화급한 시간에 한경면 말추렴까지 쫓아갔을 것인가. 엄지 손가락 귀에 안들어갈 소리로 도민들을 우롱해서는 안된다.
그러잖아도 김지사는 ‘경조사 지사’로 정평이 나있다. 평일뿐만 아니라 휴일에도 잔칫집과 초상집, 체육대회 집들이 등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근무시간에 머나먼 장지까지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 그리고 차량과 휘발유는 과연 누가 부담하는가. 도민은 ‘봉’이 아니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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