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380m의 바농벵듸못 남서쪽에 자리잡은 큰골 군락지. 새들이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농벵듸못·물터진 골(조천읍 와흘리)

 바농벵듸못은 동부산업도로와 남조로가 교차하는 네거리에서 남서쪽 1.5㎞ 남짓한 거리에 있다.

 바농벵듸란 와흘리와 교래리 경계지경에 자리잡은 바농오름(針岳) 북녘 일대의 벌판을 가리킨다.이가운데 ‘바농’은 ‘바늘’,‘벵듸’는 ‘들’‘벌판’을 의미한다.

 동부산업도로 와흘리 삼거리 지경에서 우마가 다니던 길을 따라 바농벵듸못에 이르는 길은 삼나무숲이 울창하다.그 높이가 무려 15m가량돼 해발 380m인 이곳에서 조차 한라산을 볼수 없다.

 그렇지만 답답함은 잠깐이다.바농벵듸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다.바농벵듸에 다다르면 탁 트인 정경과 함께 표고 552.1m의 바농오름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물풀의 융단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의 붓질이 섬세하고 웅혼하게 초록색·갈매색·솔잎색·연두색 등을 바농벵듸에 쏟아냈다.그야말로 신록의 향연이다.

 못 면적은 배후 습지를 포함해 2500평 가량될 듯 싶다.남서쪽에 자리잡은 20평 가량의 ‘큰골’군락지로 향하던 중 한 뼘 크기의 개구리가 재빨리 몸을 숨긴다.언뜻보니 머리부터 꽁지까지 등 가운데 연한 색의 줄이 달린 게 참개구리다.어린시절 제주시내 서문다리 밑에서도 흔히 볼수 있었던 이 개구리는 개발바람에 쫓겨 지금은 중산간에서나 겨우 볼수 있다.

 이곳에는 소금쟁이가 서식하며 어린 올챙이가 물가에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못 이곳 저곳에선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뽀글뽀글 숨을 내쉬고 있다.그 모습이 마치 못에 비가 내려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다.

 남쪽에는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놓은 100m가량의 돌담이 축조돼 있다.바농벵듸 일대로 흘러드는 물을 못에 가둬놓기 위해 두팔 벌려 안고 있는 셈이다.

 바농벵듸못은 늘 흥건히 물이 괴어 있어 방목지의 우마 급수장으로 활용되며 가끔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와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이 일대는 인적이 드문 탓인지 겨울 수렵기간이 되면 엽사들의 발길이 이어진다.새들에게 수렵이 허용되는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 4개월은 수난의 계절이다.이를 반증하는 듯 못 한켠에 엽총 탄피가 흩어져 있다.무척 안스럽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 이 일대의 주요 서식 식물로는 밤나무·상수리나무(너도밤나무과),꾸지뽕나무(뽕나무과),역뀌·소리쟁이(마디풀과),쥐똥나무(물푸레나무과),사위질빵(미나리아재비과),보리수나무(보리수나무과),찔레(장미과),쥐손이풀(쥐손이풀과),갈퀴꼭두서니·계요등(꼭두서니과),피막이(피막이과),가락지나물·실거리나무(콩과),인동(인동과),쥐깨풀(꿀풀과),택사(택사과),가막살이(국화과),골풀(골풀과),택사·둥근잎 택사(택사과),수크렁·개기장(화본과),밀나물(백합과),부들(부들과),솔잎사초·큰골·송이고랭이·세모고랭이·참방동사니·알방동사니(사초과),좀개수염(곡정초과) 등이 있다.

 물 터진 골은 와흘리 수기동(水基洞)에 있다.

 물이 얼마나 흔했길래 동네 이름조차 ‘물 수(水)’자와 ‘터 기(基)’자를 썼을까.

 우성목장 안에 자리잡은 물터진 골은 자연 저수지나 다름없다.특히 면적이 3000평 가까이 돼 광활하며 그 모습이 둥그런 게 마치 운동장을 보는 것 같다.일단 물이 터지면 그 양이 엄청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원찬 와흘리장은 “장마가 지면 바농벵듸못이나 물터진 골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다.일단 수량부터 다르고 기존 배후습지가 물로 잠식되기 때문에 장마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고 거들었다.

 바농오름 좌·우측에서 흘러나온 물은 물 터진 골에 모여 다시 선흘1리 고평동에 자리잡은 ‘괴드르못’으로 흘러간다.괴드르못은 수량이 비교적 풍부해 예전에는 조천읍 관내 최대 우마급수장으로 손꼽혔던 지역이다.

 물터진 골 한켠에는 짐승못이라는 봉천수를 가둬두는 못이 있다.마을지에 따르면 지금부터 5백여년 전에 조천읍 신촌리 거주 김태석(83)씨의 고조부이며 경주 김씨 입도 15대손인 김병천이 남원읍 의귀리에 살다가 살림이 궁색해지자 살곳을 찾아 헤매던 끝에 정착한 곳이 바로 이 일대라고 한다.화전과 목축을 하며 한때 10여호 가량의 인가가 있었으나 4·3당시 소개령으로 인해 마을이 사라졌다.

 이 일대에 서식하는 식물로는 밤나무·상수리나무·팽나무·꾸지뽕나무·고마리·역뀌·소리쟁이·미꾸리낚시·사위질빵·보리수나무·하늘타리·쥐손이풀·계요등·피막이·윤노리나무·찔레·쥐꼬리망초·가락지나물·실거리나무·꽁꽝나무·인동·누리장나무·괭이밥·골풀·수크렁·개기장·밀나물·세모고랭이·참방동사니 등이 있다.

 물론 이는 주요 식물일 뿐이다.도감을 뒤져 확인해봐야 할 들풀들이 문실문실 자라고 있다.모두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늪을 이루고 있다.

 물터진 골에 한바퀴 도는 동안 이 일대에 뱀이 서식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수 있었다.아주 곱게 벗겨져 있는 유혈목이(꽃뱀) 허물을 발견한 것이다.초록색 바탕에 붉은 띠가 있는 원래 모습을 볼수 없었지만 형태는 영락없는 유혈목이었다.

 유혈목이는 제주지역에 있는 뱀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다.그러나 근래들어 중산간지역 습원에서 조차 유혈목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뱀이 가장 견디기 힘든 환경은 사람들의 뱀에 대한 혐오감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생태계의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에 뱀은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을 때 과연 몇사람이나 마음속 깊이 고개를 끄덕일까.<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대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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