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지사가 끝내 출마를 선언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이다. 그동안 부지런히 뛰어왔는데 쉽게 포기할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난데없이 정계은퇴설을 뿌리며 파문을 일으켰는가.
이에 대해 그의 반대세력 측에서는 ‘고도의 정치술수’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엊그제까지 동지였던 한나라당은 “개인 영달을 위해 일련의 정치쇼를 연출한 김 지사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규탄한다”고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사실 김지사의 이같은 일련의 행보는 일찌감치 예견돼온 일이다. 본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들은 현명관 전 삼성물산회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김지사의 탈당에 이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지사가 직전 시장선거에서도 경선을 거부하고 민주당을 탈당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지사는 이 보도를 접하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곧바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탈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라고 전제, “당당하게 경선에 임하면서 돌파해 나가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 그가 이로부터 20일도 채 지나지 않아 탈당을 감행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물론 그가 처한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얼마나 서럽고 화가 났으면 그런 돌발행동을 하게됐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현역 도지사가 열심히 점수를 따려고 노력하고있는데도 유독 제주에서만 사전 통보도 없이 도지사 후보를 영입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가슴이 미어졌겠는가.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깜짝 행태를 보인 것은 공인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당시 제주도정은 매우 중대한 시기였다. 역사적인 특별자치도 특별법이 공포되던 때였다. 그래서 관련조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런 와중에 도지사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개인적 거취문제로 유세를 부리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굳이 따진다면 도지사 출마 여부는 전적으로 그의 결심에 달려있다. 누구도 출마나 불출마를 막을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그가 측근들의 만류로 불출마 입장을 번복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신중파이다. 그 자신도 “장기판에서 졸하나 움직이는데도 심사숙고를 거듭하는 법이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돌다리도 두드려서 건너는’ 그가 지지자들의 반발을 사전에 염두에 두지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뒤늦게 “도지사란 자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지만 이는 더욱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어쨌든 그는 기자회견 파동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반사이익을 챙긴 것이다. 한나라당이‘치졸한 꼼수정치의 극치’라고 계속 물고늘어지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새해벽두에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원종 충북지사는 정치판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3선 당선이 유력한데도 ‘깨끗이’대망의 꿈을 접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에게는 불출마를 만류하는 지지세력의 반발이 없어서 정계은퇴 선언이 가능했던가. 김지사가 말끝마다 강조하는 당당함과 도민자존심은 어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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