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를 즐기는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나이가 무슨 제한이 될까…자신의 욕구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나설 일이다"

나도 이제 어릴 적을 돌아볼 때가 종종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농사와 바다 일을 동시에 하며 오남매를 키운 부모님은 노동으로 허리가 휘어지고 손마디가 굵어진 채 이제 칠순을 넘기셨다. 어린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갔다 오면 한 솥 가득 물 끓여 놓고 소와 말먹이를 챙겨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야말로 어른이든 아이든 노동하는 것이 기본인 시절이었고 농촌 환경이 그러했다.

집에 있던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간혹 사주셨던 참고서가 고작이던 그 시절에 어린 나로서도 문화적 욕구라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욕구를 채우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나는데,  친구에게서 빌린 카세트테이프를 밤늦도록 듣거나 너덜거리는 만화책을 빌려다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을 돌아다니며 책장사를 하시는 분이 우리 집에 들르신 적이 있었다. 중간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값비싼 전집류를 취급하는 아저씨였다. 어머니는 외출 중이었고 아버지와 어린 우리들만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책장사의 현란한 말솜씨와 노란색 하드커버로 멋지게 포장된 20여권짜리 어린이 칼라백과사전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린 우리들이 그때 아버지를 졸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아버지는 그 당시에 수십만 원 했던 그 전집을 우리에게 사주셨다. 나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판 싸우셨다는 것이 기억이 나지만 뭐 어떠랴. 그 컬러풀하고 멋진 책은 이제 우리 것이 된 것이다. 그 책에 소개된 인물들과 외국의 요리들, 형형색색의 꽃들과 파충류종류들은 우리머릿속에서 달달 외워졌고 학교가면 내가 습득한 그 지식들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바빴다. ‘소련을 세운 사람이 누구게?’ 라는 충격적인 나의 질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친구들은 한명도 대답을 못했고 나는 흐뭇한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그 백과사전은 한동안 나의 지적욕망을 채워주는 매개체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 읽게 한다고 동화나 그림책을 사면 내가 먼저 흠뻑 빠져 읽고 앉아있고  티브이에서 캔디가 나오면 너무나 반가워 아이들보다 더 몰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뒤늦게 그림이나 사진, 도자기를 배우는 아줌마 할머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하고픈 게 너무 많은 나이든 여자들을 나는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적 욕구를 풍족하게 채웠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여든이 넘으신 나의 시어머니는 가끔 피아노를 치신다. 아니 통당거리는 수준이다. 악보를 읽을 수도 영어알파벳도 모르지만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은 느끼시는 분이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이런 존재가 아닌가. 유희를 즐기고 추구하는 게 인간본성이라 생각된다면 나이가 무슨 제한이 될까. 칠십 팔십이 넘어도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나설 일이다. <오금숙·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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