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의 폭격을 받은 제주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순간최대풍속 초속 52m의 엄청난 바람과 함께 시간당 96㎜의 비·바람이 집중되면서 제주도 전역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16일 오후 6시까지 확인된 인명피해만 사망 5명·실종 1명이며 재산피해 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강한 비·바람으로 하늘과 바다는 물론 육상 도로까지 통제되면서 발이 묶였는가 하면 제주시 지역 8개 하천이 이번 태풍으로 일제히 범람하면서 피해 규모를 키웠다.

정전과 단수로 인한 주민 불편도 커지는데다 12호 태풍이 북상하고 있는 등 태풍 나리의 후유증은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리’, 작지만 강했다=전형적인 가을태풍으로 예보됐던 11호 태풍 나리는 중심기압 960hPa·강풍반경 180㎞·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 39m/s로 규모는 작았지만 엄청난 파괴력으로 제주섬을 뒤흔들었다.

제주지방기상청과 제주특별자치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6일 새벽 0시부터 오후5시까지 성판악지역에 556㎜의 비가 쏟아졌으며 제주시 오등동 482.5㎜·제주시 420㎜·서귀포 265.5㎜·남원 249.5㎜·성산 177㎜·고산 113.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강수량의 상대적으로 적었던 고산 지역에는 이날 순간최대풍속 52.1m/s의 강한 바람이 불었던 것으로 관측됐다.
초속 50m의 바람은 자동차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이날 고산지역에 분 바람 지난 2003년 제주도를 쑥대밭을 만들었던 태풍 ‘매미’ 다음으로 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성산 지역에 43m/s의 바람이 불면서 성산읍체육관 지붕 전체가 날아갔으며, 주택 37채의 지붕도 파손됐다. 양어장 1곳과 시설하우스 6동 등 바람 피해가 속출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에도 각각 36.1m/s·35.5m/s 등 성인이 제대로 서있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 도로 막히고, 하천 넘치고=이번 태풍으로 오전 6시23분 공항 5가로와 다호부락 진입로가 통제된 것을 시작으로 제주시와 함덕··성산·한림·남원 등 전지역에 걸쳐 도로 34곳이 통제됐다.

서성로 30m가 비로 유실되면서 전 국간이 통제됐는가 하면 하천 범람에 따른 도로통제가 잇따랐다.
오후 2시 이후 화북천과 산지천·병문천·한천·금성천·삼수천·부록천·방천·월대천 등 제주시내 9개 하천이 범람하면서 인명·재산피해가 속출했다.

한림 명월천과 서귀포 솜밤천, 남원 학림교 등도 범람하면서 긴급 복구반이 투입되는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태풍 위력을 잠재우는데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산간지역에서부터 밀려내려온 물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주차했던 차량이 저지대로 쓸려내려오며 차량 추돌 사고가 잇따랐다. 제주시 용담로터리 인근에 세워뒀던 차량이 바닷가 근처에서 발견되는 등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쏟아지는 비로 제주시 40채와 서귀포시 2채 등 주택 42곳이 침수됐으며, 한라체육관을 비롯 상가 등 건물 86곳도 비 피해를 입었다.

태풍을 피해 항·포구로 피항했던 선박들도 너울성 파도 등을 이기지 못하고 오후6시까지 어선 17척이 침몰하고 4척이 좌초됐다. 또 9척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했으며 요트 등 일반 선박 6척도 태풍을 이기지 못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이 도로를 덮치면서 한때 차량고립 신고가 폭주했으며 바람을 이기지 못한 홍보아치와 홍보탑, 신호등이 쓰러지는 사고도 속출했다.

제주대병원을 비롯한 도내 병원 응급실에는 주택과 아파트 유리창 파손 등으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몰렸다.

괴력을 발휘하며 이날 오후 1시부터는 시내·외버스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택시들도 운행을 중단, 대중교통 운행이 끊겼다.

△급류 휩쓸려…사망·실종 속출=매운 태풍에 ‘장사’(壯士)는 없었다.
이날 오후2시20분 시간당 최고 96㎜가 넘는 비와 함께 하천이 범람하면서 보덕사 앞 명주주택 지하에서 살던 장모씨(여·37)와 성명이 확인되지 않은 할머니 2명이 숨진채 발견됐다.

2시30분 용담 2동에서는 역시 성명이 확인되지 않은 할머니가 숨진채 물에 떠있는 것을 인근 주민이 발견, 119에 신고했다.

오후 4시35분 제주시 화북동 부록마을 인근 차량 내에서 김모씨(여·26)가 숨진 채 발견됐으며, 5시22분께 제주대 교수아파트 앞에서 이 학교 교수 강모씨(54)가 급류에 휩쓸린 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밖에도 이날 오후 2시50분 서귀포 강정동에서 침수된 차량을 살펴보러 나왔던 고모씨(51)가 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또 오라동 한천 인근을 지나던 이모씨(65)와 소모씨(39) 부자가 급류에 휩쓸려 이중 어머니는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들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후 6시40분에는 외도 1동 월대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조립식 건물이 통째로 급류에 쓸려간뒤 건물에 살고 있던 김모씨()와 최모씨(여·)가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공항 잠기고, 학교 시설물 무너지고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제주국제공항 인근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오전 7시15분 아시아나 항공 일본 후쿠오카행 등 출발 6편과 도착 1편을 제외한 제주기점 항공기 279편(출발 139·도착 140편)이 무더기 결항됐다.

이로 인해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려고 고향을 찾았거나 휴일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관광객 등이 제주를 빠져나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특히 많은 비로 쏟아지면서 신제주 일대에서 빗물이 저지대로 몰리면서 제주공항내 도로가 1m 가장 침수, 공항 출입이 한때 통제됐다.

또 새로 확장신축된 공항 동쪽 건물이 일부 침수됐으나 대합실은 침수피해가 없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한국공항공사제주본부는 버스를 이용해 관광객과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도내 각급 학교도 태풍으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16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현재 오현고와 제주여고 등에서 침수피해 등이 접수됐다.
오현고는 인근 화북천이 범람하면서 본관과 기숙사 조립식 지붕이 파손됐고, 급식소와 매점도 침수 및 파손피해를 입었다.

강풍으로 테니스장 안전시설이 날아갔고, 향나무 등 나무들이 쓰러졌으며 금속지붕 일부가 파손됐다.
삼성여고·대기고를 비롯한 도내 초·중·고교에서 유리창이 깨지거나 일부 시설들이 파손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제주남교 병설유치원은 침수 피해가 커 17일 휴원조치가 내려졌다.

△도내 관광지·시설 생채기
추석 특수를 기대했던 도내 관광지들도 태풍에 속수무책이었다.

제주시 목관아지와 산지천 피항선이 이번 태풍으로 침수피해를 입었으며 삼양선사유적지도 일부 침수피해를 입었다.
천지연폭포도 범람하면서 인근 가로등과 도로 난간등이 파손됐다. 주상절리 시설물이 태풍에 상처를 입었고 서북전시관 조경수도 바람에 일부 쓰러진 것으로 파악됐다.

산방산 인근에 설치됐던 하멜상선은 현재 파손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상태며 만장굴은 지난 집중호우에 이어 또 침수 피해를 입었다.

감귤박물관 내 비닐하우스 2동이 일부 훼손됐으며 유리창 수십장이 깨지는 등 시설물 피해도 발생했다.

해녀박물관과 항일기념관 천장 일부가 파손되는 등 지정 관광지 피해가 속출했으며 사설 관광지 피해도 계속해 접수되고 있다.

관광숙박시설도 태풍에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해비치 호텔&리조트내 심어진 조경수의 20%가 바람으로 쓰러졌고 유리창과 지붕 이음새 일부가 훼손됐다.

사이프러스 골프&리조트 역시 조경수와 콘도지붕 부착물 피해 신고를 접수했으며 CS호텔은 발전·기계실과 메인정화로가 침수됐고 식당 초가지붕 2곳이 훼손됐다.

제주시내 오리엔탈 호텔 시설물 일부가 파손되면서 이용객이 부상을 입는 사고도 발생했다.

△정전…단수…생활 불편 눈덩이
태풍으로 인한 정전은 피해 복구 속도가 늦어지면서 주민 불편을 키웠다.

태풍으로 도 전역에 걸쳐 17만1569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대형 종합병원이나 대형매장 등에서는 자체 발전기를 가동, 정전에 대비했지만 ‘나홀로’아파트나 상가 등에서는 정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정전은 또 태풍에 따른 강한 바람으로 보수가 늦어지면서 주민들은 5시간 넘게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특히 이번 정전으로 일부 학교에서 진행되던 토익 및 워드프로세서 자격 시험이 중단되는 등 수험생들이 항의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대형매장 중에는 정전과 침수가 계속되자 임시 휴업에 들어가는 곳도 있는 등 생활 일부가 마비됐다.
침수·정전으로 도내 정수장과 수원지 등이 피해를 입으면서 오후3시부터 도내 일부 지역에 단수 조치도 내려졌다.
한림정수장 송수장과 강정정수장 취수장, 삼양1수원지 취수장·수배전실이 침수됐으며 삼양2수원지는 정전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동광양가압장 수배전실과 외도수원지 취수장에도 물에 잠기면서 물 공급을 일부 중단했다.

△피해 눈덩이…상황실은 우왕좌왕
‘양동이’폭우와 강풍이 집중되면서 피해가 계속해 늘어났지만 도내에 설치된 ‘상황실’은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공사제주시자 상황실은 갑작스런 정전으로 상당시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KT상황실에는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서 제대로 민원처리를 하지 못해 불만을 샀다.

하천 범람 등으로 급격히 늘어난 물로 도로가 침수, 차량 고립 사고도 속출했지만 피해 상황 접수 및 신고 전화가 폭주하면서 112와 119 모두 한때 불통되기도 했다.

도 재난안전대책본부 역시 강력한 가을 태풍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는 했지만 피해 접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허덕대는 등 ‘숙제’를 남겼다.<고 미·김영헌·이영수·김용현·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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