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문오름 화구호. 종래에는 방목지 소들이 이곳을 찾아 물을 먹고 바닥을 다져줘 물이 마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거문오름 분화구(한림읍 금악리), 처나름못(한림읍 상대리)


 제주 섬은 들춰보면 또다른 신비의 속살을 드러낸다. 하루면 섬 한 바퀴를 돌수 있지만, 길 한자락을 벗어나면 또다른 세상이다.

 10년전, 20년전에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제주의 곱게 단장한 겉모습만 보고 돌아갔다.

 그러나 요즘은 변했다.아는 만큼 여행은 즐겁다.제주의 유명 관광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제주의 하늘, 제주의 바다, 뜨거운 태양아래 삐들삐들 타들어가는 억새밭 풍경, 섬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진하게 밴 오름과 초원에서 묻어나는 제주의 체취, 샛노란 유채향보다 더 진한 그런 제주의 냄새를 맡고 싶어 한다.

 습지취재팀이 이번 행선지로 택한 거문오름 화구호도 그중 하나이다.표고 428m·비고 180m,한림읍 금악리 남동쪽에 자리잡은 거문오름은 흔히 ‘금오름’이라고도 하며 남동사면을 사행(斜行)하는 길을 따라 정상까지 30분가량 느릿느릿 올라가면 타원형의 화구와 파란호수가 펼쳐진다.

 화구의 바깥둘레는 약 1.2㎞이며 남북으로 긴 타원을 이루고 있다.산정화구로서는 꽤 큰 편이다.

 이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천아오름·새미소오름·정물오름이 한눈에 들어온다.또 완만한 구릉을 타고 목장지대가 펼쳐치며 다양한 수림의 경관이 뛰어나다. 뭍 사람들은 별로 찾지 않지만 외려 제주의 속 모습을 볼수 있어 좋다.

 1963년 한림읍에서 펴낸 읍지에는 ‘금악 상봉에는 넓이 약 3만평에 이르는 대분화구에 약 5천평의 내지가 있으니 이를 금악담(今岳潭)이라 한다.천고에 청징하여 가뭄이 계속돼도 수심이 내리지 않으니…,백록담 버금가는 분화구의 못’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거문오름은 한가지 모습이 아니다.남쪽이나 북쪽에서 볼 때에는 원뿔형태이며 동쪽이나 서쪽에서 볼 때에는 사다리꼴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재 거문오름은 금당목장조합에서 소 방목지로 쓰고 있다.조합측은 최근에는 행글라이더 동호인들이 하늘을 날기 위해 이곳을 찾는 바람에 임신한 암소가 유산을 하는 등 피해가 크다며 차량진입을 막기위해 산정 진입로에 철문을 설치했다.

 철문 안쪽에는 ‘생이물’이 있고 진입로를 따라 오름 허리쯤에 올라가면 오름 동쪽 목초밭에 있는 ‘논아진밭물’이 눈에 들어온다.

 생이물은 오름 남쪽으로 흘러드는 표출수가 모이는 곳으로 돌담을 쌓아 한때 음용수로 이용했다.근래에는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되며 면적은 약 10평가량된다. 수령이 약 200년가량 된 팽나무 두그루가 못을 지키며 서 있는 게 인상적이다.

 논아진밭물은 비가 조금만 와도 이곳에서 물이 넘쳐 나와 주변 밭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인 듯 싶다.

 주변에는 맹꽁이를 비롯 게아재비·물자라·물방개·소금쟁이·산개·개구리·유혈목이·흰뺨검둥오리 등이 서식한다.습지식물로는 마름과 애기가래·큰고랭이,붕어마름·버드나무 등이 있다.

 이가운데 맹꽁이나 유혈목이는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동물이다.최근에는 마른장마와 함께 근래보기 드문 가뭄현상으로 인해 화구호가 바닥을 드러내자 생이물·논아진밭물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갔다.

 강인선 금당목장 조합장(54)은 “화구호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가뭄탓만 아니다.소 사육두수가 줄어 최근에는 당오름쪽에서 방목하기 때문에 물이 빠진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거문오름 일대에서 소가 방목됐을 때는 물을 먹으러 간 소들이 계속 바닥을 다져주기 때문에 좀처럼 물이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송아지값이 30∼40만원대로 폭락,금당목장 조합의 소 사육두수가 500두에서 250두로 떨어지는 바람에 양질의 목초지를 찾아 이곳 저곳 옮겨가며 방목하는 일은 사라지게 됐다.

 한림읍 상대리 천아오름 자락에 자리잡은 처나름못은 예로부터 이곳 주민들의 소중한 식수원으로 자리잡아 왔다.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 길 안내를 맡은 김중서 상대리 노인회장(73)은 “내가 12살 이던 해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바닥을 드러낸 일이 없다”고 자랑했다.

 천아오름에서 흘러나온 표출수는 대개 이 일대로 모여지기 때문에 4.3이전에는 논농사도 했다.

 어쨌거나 처나름못은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이 물마저 말라버릴 경우에는 비교적 양질의 용천수를 갖고 있는 한림읍 동명리·명월리로 나가 물동냥을 해야 한다.

 처나름못은 알처나름과 웃처나름으로 구분된다.알처나름은 음용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면적이 50평가량 된다.웃처나름은 250평 가량되며 대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다.

 이가운데 웃처나름은 17∼18년전에 인근 농로 확장과 함께 천아오름 쪽에 인동 장씨(仁同 張氏) 묘지가 들어섬에 따라 진입로 확보 과정에서 일부 매립돼 지금은 130평 규모로 축소됐다.

 또 알처나름은 식수원으로 활용됐던 까닭에 누대로 애써 관리해온 흔적을 엿볼수 있다. 구지뽕나무·팽나무·버드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못 하단에는 정교하게 돌담이 축조됐다.

 주요 수생식물로는 흰꽃여뀌와 개구리밥,좀개구리밥,닭의장풀,사마귀풀,자귀풀,올미,올챙이자리,개망초,가래,말,네가래,강아지풀,기장대풀,큰고랭이 등이 있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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