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트러스트’ 불 지피다

   
 
   
 
그 곳에 가만히 발을 내딛으면 발바닥을 타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곳에서 제주는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나무들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제멋 대로지만 나름대로 운치 있게 자리를 잡은 수풀과 이름 모를 새소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듯 한다.

여기서는 앞을 막아선 나뭇가지들을 치워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걸음 더 돌아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모자란 ‘시작은 반’

곶자왈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함부로 손을 대도 좋을 중산간 이름 없는 땅이었지만 ‘곶자왈’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아진 지금은 제주의 미래를 지켜줄 소중한 생태 보고다.

그런 곶자왈을 지키고자하는 움직임은 지난해 초부터 활발히 진행돼왔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인 ‘내셔널 트러스트(NT)’의 중심축이 될 곶자왈 공유화 재단(이하 재단)이 4월 출범했다.

재단은 지난해부터 오는 2016년까지 도내 전체 곶자왈 중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66㎢ 중 10%인 6.6㎢를 매입한다는 장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3억 7500여 만원을 투입, 곶자왈 보전자산을 사들인다는 계획은 그러나 출연금 등 자금 조성 문제로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된다.

지난 8월 곶자왈 보전조례 제정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기는 했지만 ‘곶자왈 트러스트 전략 구축을 위한 세미나’나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곶자왈 보전 교육·홍보사업 등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재단 출범으로 곶자왈 보전에 대한 의지는 일단 확인한 만큼 제주 색깔에 맞춘 ‘트러스터 운동’을 정립,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런 배경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러스트에서 트러스트를 배운다

   
 
  ▲ 어린이 곶자왈 신나는 여름 캠프 교실  
 
전국적으로 NT 운동이 강하게 일고 있다. 현재 이같은 방식으로 보존을 추진 중인 곳은 10여곳. 이미 이 운동으로 보존에 성공한 곳도 생겨나고 있는 등 NT는 새로운 환경운동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조심스런 평가도 나오고 있다.

광주 무등산(1993·무등산 공유화 재단)·대전 오정골 외국인선교사촌(1999·한남대)·강화 매화마름 군락지(2002·㈔한국내셔널트러스트)·최순우의 옛집(2002·(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동강 제장마을(2004·㈔한국내셔널트러스트)·서초구 우산면(2006·우산면내셔널트러스트)·부산 100만평 시민공원 조성협의회 등은 대표적인 국내 사례.

국내서 가장 오래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광주 무등산 공유화 운동. 지난 1993년 시민들이 무등산을 난(亂)개발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로 ‘무등산 보호단체협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시작됐다. 한 계좌 1000원 모금 운동 등을 꾸준히 벌여 1억7000여만원을 모았으며 개인이 매입해 기증한 땅도 1405㎡가 넘는다. 광주시의회도 조례를 제정해 시(市) 재정으로 이 운동을 돕고 있으며 2005년 무등산공유화재단이 발족됐다.

2000년 가을 시작된 부산의 ‘100만평 공원 운동’은 현재 시민단체인 ‘100만평 문화공원 시민협의회’(330만㎡)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2005년 11월 둔치도 일대 2만6000㎡(7800평)를 매입, 부산시에 ‘공원 용지’로 기부했는가 하면 지난 9월쯤 이 부지 내 1만㎡를 시 예산으로 매입했다.

시민협의회측은 지난 6월 공원부지로 지정된 둔치도 땅 주변 8691㎡를 시민기금 6억원으로 사들인 뒤 특수법인 자연환경국민신탁에 신탁해 주변 난개발을 막는 ‘착한 알박기’를 하기도 했다.

2005년 12월 7일에는 전주 시민들이 한 구좌당 1만원씩 부지 매입비용을 모금, 완산칠봉 주변습지 1540㎡(470평)에 대한 부지 매입비용 1000만원을 완납함으로써 2002년 9월부터 추진해온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완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제 시작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고 실망하고, 결과물을 내놓으라 닥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곶자왈 공유화 재단’은 이제 세상에 태어났고 걸음마를 시작했다. 저마다 얼굴 생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처럼 곶자왈 공유화 재단 나름의 특색을 살려 효과적으로 곶자왈을 보전해 나가는 것이 지상 과제이자 목표다.

곶자왈 공유화를 위해 ‘한 평사기 운동’을 한다고 단순히 땅 사기 운동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환경이라는 이념과 기부행위가 결합된 이념적 실천운동인 만큼 땅을 사들이는 것 못지 않게 환경보호 의식을 고취하고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강 문희마을에서 실제 매입하게 되는 땅은 마을의 극히 일부인 9900~1만6500㎡으로 그 안에 독특한 양식의 세칸 짜리 집을 구입, 생활 환경을 체험하는 교육장으로 쓰게 된다.

사들인 곶자왈을 관리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전 국토의 1.5%와 해안지역 17%를 공유화한 영국에서는 연간 회비 6000억원의 60% 정도를 보전 관리에 사용한다.

북아일랜드의 자이언츠 코웨이(훼손위기 주상절리대 매입·관리·1960~)는 일반적인 관리부터 환경해설판 등을 통한 안내,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보고서 발간 등으로 국가와 공동으로 다양한 보존 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다. NT를 통한 효과적인 환경 보전 정책과 의식 정착을 위한 국내·외 사례 수집과 제주형 NT구축도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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