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이학년 때의 일입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아리 두 마리를 샀습니다. 봄볕 받은 노란 병아리가 귀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새 식구가 들어왔다면서 아버지가 닭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병아리 한 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 눈을 보시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울 것 없다. 병아리 몇 마리 더 사자.”

그 말을 듣고 학교에 갔습니다. 병아리 한 마리가 죽음으로써 모두 다섯 마리가 되었습니다. 병아리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밥찌꺼기도 먹고 아버지가 사온 사료도 먹으면서 잘 자랐지요.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닭장 앞에 붙어서 살았습니다. 전에 같이 놀던 나비가 옆에서 낑낑거려도 닭이 먼저였습니다. 풀을 뜯어다 주고, 비 개인 다음날에는 지렁이도 잡아주었습니다.

주먹만 하던 노란 병아리 몸이 점점 커졌습니다. 약병아리가 되었다가 곧 닭이 되어갔습니다. 깃털도 점점 붉어졌습니다. 그 즈음이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닭장으로 달려갔는데 하얗고 둥그런 알이 놓여있었습니다. “우와! 알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닭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만져 본 알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했습니다. 막 쑤어낸 묵을 만지는 느낌이었지요.

아버지가 다른 계란껍질을 빻아서 사료에 섞어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먹은 닭이 다음날부터는 단단한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칼슘이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닭에게 그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병아리가 들어와서 즐거움이 늘었습니다. 씨암탉이 알을 낳으면서 빈약한 식탁이 풍요로워졌습니다.

다향이가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여러분이 걱정을 합니다. ‘뭐 잘났다고 학교를 그만두게 했냐?’고 질책하는 분도 있고,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냐?’고 염려하는 분도 있습니다. 더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잘했다.’고 격려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 모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요. 제도권 안에 있다고 해서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그 틀을 벗어났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요.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음악이나 미술을 하든, 요리를 하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성공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가?’가 아닐까요? 지금 병아리처럼 삐악대는 다향이가 어떤 알을 낳을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오성근·전업주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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