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 르네상스 2. 한국사회와 다크 투어리즘 ⑪거창사건추모공원

경남 거창군에도 칼바람은 매섭다. 거창군내 재래시장에서 푸짐한 아침밥상을 마주할 때만해도 그곳을 향한 호기심에 마음은 들떴다. 30분∼1시간의 버스배차간격은 성질 급한 나그네에겐 고역이다. 하여 무작정 택시에 몸을 실었다. 거창사건추모공원.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시내에서 30km이상  떨어진 외진 곳에 거창사건추모공원은 야산에 숨듯 위치해 있다. 한국전쟁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곳. 하지만 '폭풍의 언덕'이다. 겨울 탓인가. 인간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영령들의 넋을 기려야 할 곳에 위로의 온기는 아무데도 없다. 역사의 아픔은 치유되지 못했다. 똬리를 튼 채 인권실현의 날만 고대하고 있다.

#학살의 참혹함, 평화의 기원으로 승화
경남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551번지에 위치한 거창사건추모공원. 이곳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 사건인 6·25전쟁 중 1951년 2월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조성됐다.

   
 
  ▲ 거창사건추모공원 위령탑  
 
지난 1996년 '거창사건등관련자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조치법' 제정에 의해 추진된 사업으로, 총 부지면적 165000㎡(약 5만평)규모의 합동위령사업을 1998년 착공, 2004년에 준공했다.

이곳에는 천유문,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위령묘지, 역사교육관이 들어서 있다.

위패봉안각은 거창사건의 승화공간이다. 1951년 2월9일 청연마을에서 1차로 희생된 84명, 같은 해 2월10일 탄량골에서 2차로 희생된 100명, 같은 해 12월11일 박산골에서 3차로 희생된 517명, 그리고 연행도중 희생된 18명 등 거창군 신원면 3곳에서 희생당한 719명(14세이하 359명, 16세 60세 294명, 60세 이상 66명)의 위패가 있다. 매년 추모제를 지내는 곳이다.

천유문은 일상공간과 성역을 구분하는 문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에 대한 추모공간이다. 참배광장은 위령탑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적이며, 바닥은 태극문양을 이루고 주변에는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님이여 이제 천상에서 행복을 누리소서' 제목의 위령탑은 위령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거창사건으로 희생된 남녀, 어린이의 무덤을 상징하는 3단의 돔 사이로 영혼이 부활해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오름을 상징하고 있다.

위령탑 주변에는 군상이 있다. 제목은 '참회'와 '환희'다.  '참회' 는 고인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끼친 국군들이 진심으로 영령들과 유족들에게 참회하는 모습을 환조로 표현했다.
'환희'는 후손들의 정성어린 위로속에 한을 풀고 승천의 기쁨을 만끽하는 영령들과 유족들을 환조로 표현했다.

또한 부조벽은 공비토벌을 위해 투입된 국군들에 의해 온 마을이 소개되고 내몰리는 민간인들의 불안한 참극에서부터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조사단 피격과 분묘이장, 비문파손, 통비혐의로 고통받는 유족들의 모습까지를 표현했다.

그리고 거창사건역사교육관은 거창사건이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교훈을 삼을 수 있는 역사교육현장이다. 808.64㎡의 면적에 연출 모형류, 기록물, 신문자료, 판결문, 사진류, 작전일지 등의 사료와 영상물, 각종자료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인근에는 박산합동묘역이 있다. 희생자 719명 중 517명의 희생자가 묻힌 이곳은 사건이

   
 
  ▲ 거창사건역사교육관내 전시물  
 
일어난 지 3년만인 1954년 4월7일 유골을 수습하면서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어서 큰뼈는 남성, 중간뼈는 여성, 작은뼈는 어린이로 구분해 합동묘 3개를 조성했다. 하지만 5·16정부에서 위령비를 정으로 쪼아 땅에 묻고 개장명령을 했다.

#오지에 세운 추모공원, 시민 발길 더뎌
거창사건추모공원은 관련시설 외에 후속사업들을 진행 또는 계획하고 있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주관처인 거창사건관리사업소는 공원내 조경시설의 대대적인 보완과 거창사건추모공원의 외형에 걸맞은 볼거리 및 체험거리를 마련해 현대사 답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거창사건 내역비와 추모시비 건립, 거창사건을 국사교과서 현대사에 등재하는 등 거창사건의 진실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거창사건관리사업소의 여러 계획에도 불구, 거창사건추모공원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하다. 매년 이곳을 찾은 관람객수가 4만여명에 불과하다. 하루 입장객수가 100명꼴이다. 준공 5년째를 넘고 있는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대한 홍보부족이 원인이다. 

공원위치 등 지리적 한계도 있다. 공원의 위치가 행정상은 거창군, 생활권은 산청·진주권에 놓여 군민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 박산합동묘역  
 
공원면적이 방대한 반면, 기념사업과 문화공간, 체험공간이 빈약해 공원분위기는 삭막할 따름이다. 각종 추모시설물들이 분산돼 있는 가운데 관람객의 방문도 드문 탓에 공원을 돌아보는 내내 나그네는 을씨년스럽고, 차갑고,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젖어야 했다. 제주4·3평화공원이 거창추모공원보다 낫다고 해야 할 정도다. 제주4·3평화공원은 그래도 까마귀라도 울어대니 말이다.

거창사건추모공원이 드러내는 입지와 규모의 극단적 부조화, 언표된 장소적 기표들 간의 충돌과 언표되지 않은 역사적 의미의 파열음으로 가득찬 공간들간의 모순(김백영 '거창사건추모공원의 공간 분석'학술논문)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서 가장 맛있다'는 거창사과를 씹으며, 사과보다 못한 공원의 맛을 설명하긴 쉽지 않다. 택시운전기사의 말 한마디가 귀에 남는다. "거창사건추모공원을 오지에 조성한 것은 잘못이다. 공원은 시민의 일상속에 있어야 산다. 언제든 공원에 들러 향 꽂고 희생자들을 넋을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거창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가 치유되고,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죽음이 진정 위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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