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수(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어린이에서 청년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중딩'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학교생활에 많이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추억에 남을 만한 학창시절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같이 책과 씨름이다. 왜 학기 초에는 누구나가 잘해보려고 하지 않는가. 그 책 제목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 무거운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등등이다. '저 녀석 나이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만화든 소설책이든 원 없이 읽어 봐야 하는데...' .  시대에 뒤떨어진 순진한 내 생각을 탓하며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책을 읽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언제일까. 너무나 식상하고 뜬금없는 소리다. 책이란 어느 시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책을 읽기에 가장 적당한,  아니 가장 영향력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청소년 시기인 것 같다. 어린 아이일 때 책은 단지 지식과 정보, 혹은 재미를 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이 된 후에도 책만 파고들고 있다면 몽상가, 혹은 이론가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청소년 시기는 폭풍우를 몰고 다니는 시절이다. 몸과 마음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물결치는 시절이면서 그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본인 스스로 짐작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시절인 것이다. 이 시기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고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매체가 바로 책인 것이다. 청소년기에 만난 한 권의 책, 혹은 한 편의 영화, 혹은 어떤 사건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우리가 정말로 많이 듣는 말이다. 그만큼 이 시기에는 뭔가 결정적인 만남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예고되는 시기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바로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 청소년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 아마도 교과서와 참고서 밖에 없을 것이다. 교과서는 지식과 정보를 주지만 결코 지혜를 주는 책은 아니다. 만남을 예고하는 책은 더욱 아니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많은 지식과 정보 속에서 똑똑한 아이들로 거듭나고 있지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는 많지 않다.
아들에게 지식보다 지혜를 만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가져보라고 권하면서도 이 냉혹한 현실이 슬픈, 화사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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