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제주외고 논술교사)

햇살이 여름처럼 뜨거웠던 지난 5월 8일. 죽마고우였던(이 정도의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된다) 친구를 잃었다. 몇 년 간의 고통스러운 투병기를 씩씩하고 밝게 견디던 친구의 비보를 듣고 나의 첫 마디는 "왜?"였다. 내 친구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환자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씩씩했고 밝았으며 예쁘고 멋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만났을 때도, 전화 통화를 했을 때도 우린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러니 친구의 죽음은 내겐 돌연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리석은 나였다. 서로의 속내까지 웬만하게 안 다고 했던 내가, 진정 내 친구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내 곁에서 하루하루 멀어져 가던 친구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친구야!" 달콤한 골드 키위 쥬스를 가져간다는 약속도, 김장훈 콘서트에 이은 콘서트 나들이 약속도, 가까운 해외 여행 계획도, 한라수목원 산책도 이젠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내 친구는 긴 생머리를 트레이드마크처럼 고수했고, 나는 친구에게 시원하고 세련되게 컷트를 해보라고 자꾸 바람을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련된 단발 컷트를 하고 월드스타의 컴백처럼 나를 찾아왔을 때, 질투 나게 예쁘고, 수줍은 듯 행복해 하던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날의 그 눈부신 모습이 영정이 되어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죄스러웠다. 살아있을 때, 따뜻했을 때, 서로의 맥박을 느낄 수 있을 때, 이렇게 꽉 한 번 안아주지 못한 것이 살아가는 내내 죄스러울 것 같다.

이젠 내가 내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돼 버렸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저린다. 하지만 내 친구는 언제라도 내 기억으로 찾아와 내게 많은 것들을 선물해 주고 갈 것이다. 내 친구가 내게 가르쳐 주고, 깨닫게 해 준 삶의 기술과 지혜가 나의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친구야~ 네가 마지막 호흡을 향해 힘든 숨을 몰아쉬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넌 우리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어! 넌 나에게 정말 멋진 친구였어! 잘 가~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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