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제주외고 논술교사)

몇 달 전 나는 아버지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처음 컴퓨터를 배우실 때는 하루에도 몇 통씩의 짧은 메일을 보내 은근히 답장의 압박을 하시더니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삶을 즐기게(?) 되고 나서는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나 메일을 보내시는데 뜻밖이었다.

"우연히 책 속에서 좋은 단어를 발견했어. 예전엔 그냥 넘겨버린 별 기억이 없는 단어가 적절한 계절에 인연이 되서 이렇게 적어 보낸다. '연리지(連理枝) :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통한 것(common boughs), 사이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harmonious couple)' . 엄마는 몇 일 전에 전라도 쪽에 농촌체험관광을 다녀왔고 ((사)제주지역농업발전연구소 지역농업특성화파트주관) 다음 주엔 표선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자매결연지 상호 교류방문차 나들이가 예정되어 있어 출타가 많다. 요새 아빠는 앙상했던 가지들이 서로 엉키어 연리지 이룬 숲 밑으로 주렁주렁 달린 키위 열매 솎아내느라 동분서주 좌충우돌로 말이 아니구나. 하루가 다르게 열매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쁨 또한 여기서 찾고 있단다. 연리지! 이걸 엄마에게 설명했더니 우리 부부의 모습이라면서 얼른 아빠 품에 안기더구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경아, 이 단어를 잘 기억하고 동언이랑 항상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전한다."

간만에 보내 온 아버지의 메일은 내 가슴을 붉게 물들게 하더니 이내 따뜻한 눈물 한 줄기를 흐르게 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이 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가늠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내 가슴 속에 모두 주워 담아보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한 날에 예상치 못했던 행복한 편지나 선물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가슴 떨리는 고백을 들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쌀쌀해지는 늦가을의 문턱에서 추억을 하나 씩 찾아서 건져 올릴 때마다 수많은 산들이 붉게 단풍이 물드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저 산의 색색 단풍 저리가라 할만치 따끈한 단풍이 들고, 몇 일 내내 행복한 미소가 당신의 입가에서 춤을 출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모든 일이 이해가 되고, 모든 피로가 비켜갈 것이다.

망각의 늪 속에 빠져있는 그 기분 좋은 기억들을 더 추워지기 전에 하나 둘 꺼내어 가슴 한 복판으로 옮겨놓아 보자. 그리하면 추운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있는 따스함을 얻어 추운 계절, 힘든 시절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오매~ 우리들 마음 속에 단풍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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