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제주외고 논술교사)

기상청에서는 '장마'에 대한 예보를 하지 않았지만, 후텁지근함과 눅눅함으로 인한 불쾌지수의 상승, 관절염 지수 상승, 빨래 건조 지수 하강, 나들이 지수 하강 그리고 엉망이 된 바이오리듬을 보면 지금 현재 '장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장마'라는 것에 걱정을 하고 있는 까닭은 자연적 현상의 하나인 장마 때문이 아니라 내 생활과 내 마음에 찾아온 '장마' 때문이다.

출산 휴가를 끝내고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업무, 졸업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논문, 이래도 저래도 영 만족스럽지 않은 육아, 엉망인 딸 노릇 며느리 노릇, 그리고 완전 직무유기감인 아내 노릇, 그 외의 해결되지 않는 소소하면서도 중대한 일상적인 일들이 세탁기 속의 빨래들처럼 서로 부딪히고 엉켜서 나의 심신엔 장마가 찾아왔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왜 나는 아무 것도 하기가 싫은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꼬여버린 상황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

답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답은 하나다. 바로 나! 내가 으랏차차 힘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을 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지속적이지 못해 우울하고 서글프다.

이런 내게 어제 밤, 늦은 퇴근을 하는 남편으로부터 'you are my energy!'라는 짧은 문자가 왔다. 남편에게 있어 나와 우리 딸은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에너지 중 딸 아이는 편도선염으로 방전 중이고, 아내 역시  심적 장마 바이러스로 방전 중이니 어쩌면 좋을까? 

 '에너지들 방전중!'이라고 답장을 보내곤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내 몸 위로 기어오르며 활짝 소리내 웃는 딸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답을 찾았다.(매일 아침 우리 딸은 항상 이랬는데 왜 몰랐을까?) 나는 딸을 번쩍 안아 올려 비행기를 태우며  "우와~ 나의 에너지! 너는 나의 에너지~ 너는 나의 에너지"를 외쳤다.

나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웃음을 보내주고, 나를 향해 전속력을 내서 기어오는 7개월 된 엄청난 에너지 내 딸을 옆에 두고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방전된 채 있었나 싶다. 이제 더 이상 장마의 영향권에 머물 순 없다. 나에겐 남편이라는, 딸이라는 가족 에너지가 '방전율 제로'라는 완벽 성능으로 '항시 충전 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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