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소설가

   
 
  ▲ 양혜영  
 
언제부턴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별히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닌데도 거울 앞에 서면 늘어난 잔주름을 문지르고, 새치를 뽑고, 도톰해진 턱살을 마사지 하느라 분주하다. 그래서 거울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다고 무슨 병 운운하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요즘 거울 앞에서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외출하기 전 화장을 마치고 옷깃을 매만진 후 몸을 반쯤 비틀어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별로 유연한 신체가 되지 못해 좌로 한번, 우로 한번 돌리며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가며 뒷모습을 진지하게 살펴본다.

그렇다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다.  다소 내려앉은 어깨, 구부정한 허리, 펑퍼짐한 뒤태를 보면 그러지 않아도 작은 체구가 더욱 작아 보인다. 그래 일부러 바깥으로 나갈 적에는 어깨를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쫙 편 채 힘 있게 발을 내딛지만 얼마 못 가 금세 느슨해져 버리고 마니 앞모습도 그렇지만 뒷모습엔 더욱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뒤태를 돌아보는 이유는 얼마 전 겪은 당황스런 일 때문이다. 모처럼 옷을 차려 입고 나간 볼일이 빨리 끝나 퇴근인파로 분주한 도심을 한가로이 혼자 걸었다. 가을 하늘의 청명함과 시원한 바람을 외면하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참 무심하다 여기며 홀로 느린 산책을 즐겼다. 한참을 그렇게 거리를 걸어 다니다 집으로 돌아갈 차를 타러 멈췄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옷깃을 스윽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처음 본 여인이 내 상의 뒷자락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웃옷이 허리춤에 끼었어요."라고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여인의 말대로라면 원래는 엉덩이 아래 길이에 닿아 있어야 할 웃옷이 한 움큼 뭉쳐져 허리춤 사이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몰골로 번화가를 돌아다닌 사실에 대한 창피함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뭐 실수할 수 있지 싶다가도 거리로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면서 뒷모습을 한번만 비춰 봤더라면 그런 일을 피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보이는 앞모습에만 집착해 왔던 것 같아 괜히 씁쓸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게 얼굴만은 아닌 것 같다. 옷을 잘못 입어 망신을 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허둥대며 앞을 바라보는 데에 급급해 소중한 것을 놓치는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는 지, 내 이익을 챙기느라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는 지, 웃음으로 화장한 얼굴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앞모습을 꾸미는 일 못지않게 뒷모습을 살피는 일 또한 중요한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 한 자락, 앞만 보며 내딛기에도 바쁜 나날이지만 때때로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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