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 <동화작가>

   
 
   
 
베란다에서 내다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레꾼들이 지나간다. 해안 길을 따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말이 생각났다. '환상의 섬 제주, 자연이 살아 숨쉬는 섬 제주' 모 방송국이 프로그램이 바뀌는 시간대마다 내 놓는 멘트이다.

맞는 말이다. 환상의 섬이고, 사람보다 자연이 많은 섬이 제주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제주를 제주에게…. 제주도를 진정 제주에게 돌려주어야하지 않을까?'

제주의 땅들과 제주의 바람은 어쩌면 사람들로 인해 염증을 일으키며 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에 내려와서 산지 내년이면 십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제주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지금 올레꾼들이 걷는 바닷가길만 해도 처음 몇 년 동안 봐왔던 그 여유로운 길은 사라지고 아스팔트 속에 꽁꽁 묶여버린 갇힌 길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지금 저 해안 길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이었다. 자동차가 지나는 2차선 찻길을 제외하고는 흙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던 해안 길이었는데….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섰던 입석들 곁으로 봄엔 노란유채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고, 가을이면 해국이 곱게 꽃을 피워, 가는 이의 발걸음을 잡아채던 그 아름답고 소박했던 해안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새까만 아스팔트로 숨쉴 틈 없이 꽁꽁 동여매져있다. 그 뿐인가, 얼마 전 마을 안 작은 골목이 포장 잘 된 아스팔트 2차선 찻길로 변해버렸다. 필자는 노란중앙선 표시가 어찌나 볼썽사나운지 지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예쁜 현무암으로 도담도담 쌓여져있던 돌담길을 부수고, 새까만 아스팔트 찻길을 내어놓은 사람들은 정말 제주를 사랑하는 그네들이 맞는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일년에 같은 길을 달마다 이 귀퉁이, 저 귀퉁이 공사하는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밤에 남조로 길이나 1100도로를 달릴 때면 가끔 도로에서 환하게 밝은 자동차의 전조등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노루를 가끔 만난다. 그 눈빛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주도에 사는 우리들은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한다.

새로운 도로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우리가 찾던 올레 길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몇 년 만 가면 제주는 숲길을 제외하면 온통 포장 잘된 아스팔트 도로만을 만날 것이 뻔하다.

이제 제주를 진정으로 제주에 어떻게 돌려주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것이 진정한 환상의 섬 제주, 자연이 살아 숨쉬는 제주, 제주의 올레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지금 육지 곳곳도 제주 올레 길처럼 걷는 길을 만든다는데, 제주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제주에서 이제 더는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는 하지 말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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