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 ㈜컴트루픽쳐스 대표이사

1996년 10월, '영화를 만나면 세상이 달라진다'라고 굳게 믿었던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급기야 다양한 문화를 인정해야 함을 제주도민들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당시 대학생들은 만원씩 직장인들은 30만원씩 각출하여 중앙로에 자리해 있었던 옛 제주시청 건물에 그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청년들은 세계영화사에 혁명적 기념비를 세운 각종 뛰어난 영화들을 관람하고 토론하며 제주도민과 함께 만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7년 무더운 여름, 제주도민들은 때론 울고 웃으며, 때론 진한 감동에 어쩔 줄 모르는 자신들의 감정을 애써 참으며 예술영화를 보았다. 물론 불법상영본에 불법상영공간인 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방법이 아니고선 세계의 우수한 예술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유사한 방법으로 서울을 비롯한 각종 지역에서는 다양한 영화의 볼 권리를 주장하며 한국형 시네마테크의 움직임이 무르익고 있었다. 서울은 얼마 없어 그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마련했으며 몇 년 후에는 공공성을 띤 사업으로 인정받아 국고지원도 순조롭게 받게 되었다. 그들에겐 일명 '서울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있었다. 박찬욱·봉준호·김지운 감독을 비롯한 김혜수·원빈·하정우·공효진씨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들을 지지하며 동시에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15년 동안 예술영화를 도내에 소개했던 (사)제주씨네아일랜드는 이제 전문성을 갖추어 365일 내내 합법적인 공간에서 우수한 작품들을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와 능력을 겸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주도청에 제주도민의 문화향유권을 향상시킬 전용관 기획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 후, 그들은 파트너이자 친구인 제주도를 믿고 몇 년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서울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전체 10억 예산에 국고 지원 3억 5천을 받고 있는 실정이며 부산은 4억 규모를 지원받고 있지만, 매해 마다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해당 사업에 전문성이 없는 모 단체에게 그 일을 맡기려 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믿음과 신뢰를 갖고 기다려왔던 제주 시네마테크인들의 15년의 역사와 희생에 노여움을 지폈던 것이다. 심하게 뒤통수를 내려친 제주도와 개념 없는 모 단체는 제주 시네마테크 역사에 오명으로 길이 남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간 수많은 예술영화와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제주도민이야 말로 '제주시네마테크의 진정한 친구들'임을 밝히려 한다. 진정한 예술영화전용관은 이미 제주도민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제주도민 또한 심하게 뒤통수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오늘도 필자는 왜 <시>가 하루에 한번 밖에 상영 되지 않느냐는 가열한 항의전화를 받고 있다.   /오주연 ㈜컴트루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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