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나물은 왜가리·쇄백로·쇠물닭이 살고 갈대군락과 함께 소금기에 강한 풀이 자라는 염습지다.

◈엄나물·깊은못(한경면 용당리)

 한경면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타고 ‘엄나물’로 간다.이 일대의 해안은 검은 현무암이 흩어진 바다다.신창리의 ‘모살왓’을 지나 ‘베암줄’‘망동산’‘펄래물’‘신계물’‘삼동낭물’‘든지여’‘설해개’‘엄나물’로 이어지는 해안선은 마치 조각품처럼 이리저리 휘어져 있다.

 설해개의 ‘설해’는 눈바다(雪海)다.이 바다는 바람을 일으켜 수없이 뭍으로 내보낸다.검은 갯가에 흰띠를 두르듯 하얗게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쉴새없이 눈발처럼 날린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인 듯 싶다.

 특히 겨울이면 이곳에선 풍향과 풍속이 따로 설명되지 않는 봉두난발(蓬頭亂髮)같은 바람을 만날 수 있다.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이유없는 폭력의 바람,그 자체다.
 
 ‘엄나물’은 원래 설해개와 이어진 곳이다.해안도로 개설과 함께 ‘설해개’와 차단됨으로써 물의 순환을 해안도로 밑을 관통하는 통수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일대는 염습지에 해당한다.갈대 등 소금기에 강한 풀이 자라는 건조한 갯벌이다.

 갯가의 풀들은 바다쪽으로 갈수록 키가 작아진다.갈대가 사람쪽으로 가장 가깝고 갈대숲 너머는 개망초·매듭풀·갯잔디,그 너머는 칠면초다.

 길다란 띠를 이룬 갈대 숲은 또다른 바다다.바람에 휩쓸리는 갈대숲은 마치 높낮이가 뚜렷한 파도처럼 다가왔다.

 갈대는 바람에 피고 진다던가.바람이 부는 쪽으로 일제히 쓰러지고 바람의 끝자락에 일제히 일어서는 갈대숲이 장관이다.

 엄나물은 ‘조개못’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옛날에는 이 일대의 넓은 진흙 펄속에 조개가 많이 서식했기 때문에 조개못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운 모래대신 찰기 넘치는 펄흙이 몽글몽글 발가락사이로 부드럽게 밀려오기 때문에 갯벌 탐사의 참맛인 갯벌과 몸이 교차하는 감촉을 만끽할수 있다.

 특히 이 일대는 엄나물에서 흘러나온 담수와 바닷물이 교차하기 때문에 해안도로 개설되지 이전에는 팔뚝만한 민물장어와 숭어가 많았다고 한다.

 숭어들은 대개 봄 산란기때 올라오기 때문에 숭어새끼―이곳에선 ‘못치’라고 부르고 있다―가 무수히 많았다고 한다.못치는 이곳에서 20㎝가량 자란 다음 백중날을 전후해 밀물을 타고 바다로 빠져 나갔다.

 어린시절을 용당리에서 보낸 사람들은 담을 쌓아 못치의 퇴로(?)를 막고 백중을 전후한 시기에 동네 어른들과 못치를 잡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또 펄을 밟아 먹탕물을 만들면 호흡이 곤란해진 민물장어들이 펄 밖으로 나오게 돼 장어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56년께 일부 몰직각한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기위해 이곳에다 화공약품을 뿌려놓는 바람에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벼농사를 했다.1년에 70∼80석의 쌀이 수확돼 ‘부자논’이라는 지명이 붙게 됐다.

 해방이후에는 이 마을의 고남부씨가 이 일대를 매입한데 이어 63년께 제법 많은 돈을 투자해 수문을 만들고 제방을 쌓아 완전 개답(開畓)을 했다. 그러나 경제성에 밀린 나머지 경작 희망자가 없어 벼농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이곳에는 갈대숲만 있는 게 아니다.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 결과 이곳에는 앵초과의 갯까치수염을 비롯 사마귀풀·갯쑥부쟁이·개구리밥·골풀·나자스말·부들·조개풀·세모고랭이·송이고랭이·천일사초 등도 있다.

 또 방게와 쇠백로·왜가리·쇠물닭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두고 있다. 

 깊은못은 말그대로 깊은 곳에 있다.국도 12호선에서 중산간 쪽으로 난 농로를 타고 3㎞가량 들어가야 한다.특히 조래기물에서 왈래동산·캐왓·수꿈메기로 이어지는 이 길은 무척 험해 농사용 트럭을 타고 갈 수밖에 없다.

 취재팀의 길 안내는 이곳출신으로 서귀포시 천지동 3통장인 서달순씨(55)가 했다.오래전에 인적이 끊긴 터라 용당주민들도 깊은못의 위치를 잘 알지 못했으나 그는 어린시절 소를 몰고 늘상 다녔던 길이라 주변 지형에 익숙했다. 

 해발 37m의 깊은못 입구에는 수령이 150년이 넘은 팽나무가 우뚝 서 있다.순간 명당이란 생각이 드었다.풍수가는 묘자리만 찾는 게 아니다.명당이란 곧 길지,생기가 있는 땅이다.길지란 생물이 생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이 거의 없는 탓인지 이곳은 꿩밭이다.취재팀의 부산한 움직임에도 꿩들이 놀라는 기색이 별로 없다.취재팀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서야 여기저기에서 5∼6마리의 꿩이 푸드덕하고 달아난다.

 못 주변은 소나무숲과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자리잡고 있고 동남쪽엔 담장이 축조됐다.주요 식물로는 가래·세모고랭이·네가래·골풀·빗자루국화·피막이·미꾸리낚시·개기장·어리연꽃을 꼽을수 있다.

 인공 못이며 못 크기는 300㎡가량된다.못 입구에는 1938년에 세운 공덕비가 있다.이두항(李斗恒)이란 사람을 기린 비로 ‘자애롭게 옳은 일을 위해 땅을 희사해 깊은 샘을 이루니 노래소리 드높이 온 동리를 울리고 오래오래 그 덕을 칭송하리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이 때문일까.못이 무척 깊고 그윽하게 느껴졌다.<취재·사진=좌승훈·좌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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